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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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밥 먹자

앤 셜 리 2021. 5. 10. 07:42

아무튼, 줌마]

이영미는 책을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1980년대 전설의 인문교양잡지인 '샘이깊은물'을 비롯해 여러 아름다운 책들을 빚어낸 관록의 손입니다.

그에게 6년 전 루게릭이 찾아옵니다.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돼 모든 근육의 움직임이 멈추며 언어 기능이 상실되고 결국 호흡곤란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50대 중반. 사업 실패로 빚에 허덕이는 남편 대신 경제적 가장으로 살며 두 아들과 월셋집을 전전해온 그에게 루게릭은 신이 내린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덤덤하고도 유머러스하게 이 고통을 마주하기로 합니다.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먹자'란 제목의 책은 희소병 진단을 받은 그날부터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던 2018년 8월까지 페이스북에 써내려간 글입니다. 시인 최영미는 "병과 싸운 기록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일기"라고 했습니다.

"몸을 좌우로 돌릴 수가 없어서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서 짓누르는 이불을 찰 수 없어서" 고통의 밤을 보내야 하는 그는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일깨웁니다. 혼자서는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자신을 벌레라고 표현하며 "인간과 벌레는 한 끗 차이. 사람이라고 잘난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반성하고, "부질없는 것들을 붙들고 싸움하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많았는지" 후회합니다.

가족들도 변합니다.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게 된 남편과 백만년 만의 아침 산책을 하고, 그가 차려준 밥을 처음 먹어봅니다. 서른일곱에 낳은 아들은 엄마의 운전기사이자 무뎌져가는 엄마의 말을 대신 전달하는 '입'이 되어줍니다. 사느라 바빠 소원했던 남매들은 휠체어 없이는 옴짝달싹 못하는 그를 위해 계단 없는 1층 집을 마련합니다. "뭐 필요해? 어디로 갈까? 누울래?"는 하루종일 식구들에게 듣는 고마운 말입니다.

이제 1퍼센트의 숨이 남았다는 그가 "내게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가족을 위해 내 손으로 아침밥을 만들고, 친구들 만나 점심으로 시원한 냉면 시켜 국물까지 클리어하고, 저녁엔 가족들 다 모여 목구멍에서 가슴까지 뻥 뚫리게 시원한 맥주를 마신 뒤 모두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꼭 안아주겠다"는 대목에선 기어이 눈물보가 터집니다.

스물두 살. 한강에서 꽃 같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고 말합니다. 가족이라는 이 아프고도 귀한 선물에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하며 살고 있을까요. 더 늦기 전에 "괜찮아?" "미안해" "밥 먹자" 하며 보듬어주는 5월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