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59주기 아버님 추도 예배

앤 셜 리 2024. 1. 6. 06:04

슬하에 11남매를 두신 시아버님! 그 11남매중, 세분 돌아가시고 두분은 외국 살고 나머지 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오시고 세 가정만 모였습니다. 흐르는 세윌위에 있는 우리는 늙고 세월이 멈춘 아버님은 장년의 젊은 모습입니다.(6남매를 두고 아내가 상처하자 재혼하셔서 산아제한이 없던 시절 5남매를 더 두신 아버님. )
일곱 며느님중에 유일하게 아버님을 뵈었던 둘째형님, 60여년전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시네요.
네째 아드님, 워싱턴, 통화. 여기는 오전11시30분경 거기는 밤10시라네요.
2019년 추도예배때 인천아주버님.
2021년 모습.


오늘은 시아버님 59주기 추도 예배일입니다.
원래는 큰 아버님댁 인천에서 모셨는데
연로하셔서 7년여 전에 우리가 모셔왔습니다.
옛날 같으면 자연적으로 장조카에게 물릴 일입니다.
조상들에게 복 짓는 일이라고 여겼던 시절에는 대단한 월건이고 불손한 일입니다.

장손부부는 불임 부부입니다.
요즘이야 결혼하고도 부러 애 안 낳는 딩크족이 유행이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시 어른들 뵙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시댁 행사엔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 마음 이해하며 왔을 땐 오히려 작은어머니들과 사촌들이 조심. 애들이나 손주들 얘기는 삼가야 했습니다.
어쩌다 집안 행사에서 보면 곱게 사위어 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세상이 변한 요즘 어깨 펴고 잘 살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쓸쓸하게 지낸 기일은 처음입니다.
영정 속 아버님이 "애들은 다 어디 갔냐
하시는 거 같습니다.
뭔 일들 있는 거야? "하실 것 같습니다

수십 년을 병원 운영하시고 3층  넓은 거실에 가족 다 모이면
북적북적 20명이 넘었습니다.
애들 어렸을 때 30여 년 전 얘기입니다.
명절 때마다 부모님 기일 때마다 수십 년을 큰 아주머니께서 고생하셨지요.
지금은 병원문도 닫으시고 송도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고 계십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중절모 쓰시고 노신사로 동생집에 오셔서 추도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오늘은 그 자리가 허전합니다. 아현 감리교회에서 의료선교도 하시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던 분이었는데
참석 못해 미안하다며 전화만 주셨습니다. 의학박사님도 주저앉히는 세월의 야속함입니다.

염색을 해서 그렇지 머리에 파푸리 얹은 자식들 앞에
영정 속 아버님 사진은 미소년 같은 모습입니다. 환갑도 못 보시고 59세 때
돌아가셨습니다. 충남, 온양, 대천, 예산, 전주 전매서장으로 근무. 엄혹한 6.25 사변 때, 공직자 우두머리들은 무조건 끌어다가 총살당할 즈음  명단에 있는 이름석자를 빼라는 누군가 지시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분입니다. 일촉즉발의 찰나에 아랫사람 잘 챙긴 덕을 본 겁니다. 운동으로는 당구, 테니스를 잘 치셨고 퉁소나 피리 등은 잘 부르셨을 뿐 아니라 악기를 대나무 깎아 직접  만들어 나누어 주셨다는 추억입니다. 유머와 윗트도 많으셨고 그것도 유전인지 남편과 다섯째 시동생이 물려받았습니다.
여섯째 시동생은 국민대 법대교수였을 때
한 학생이 쪽지를 주더랍니다. "이제까지 들었던 강의 중 최고라며  알아듣기 쉽게 재밌게  강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쪽지를요.
노래도 수준급입니다. 대형교회 찬양대 지휘도 하는 자손도 있고 물질은 하나도 없고  아버님의 유산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받은 가족입니다.

옛날엔 공직자 월급이라도 하, 적어 늘 쪼들리는 생활였답니다. 그래서 다 모이면 웃픈 얘기들이 많습니다. 듣다 보면
TV코미디 프로보다 더 웃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