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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향연] '미움 받을 용기'가 正常일까

앤 셜 리 2015. 6. 26. 12:07

'미움 받을 용기'라는 번역서가 올 상반기 최고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연인 시절 하루라도 안 보면 미칠 것 같아 결혼한 부부도 '사네 마네' 하며 서로 미워하는 것이 흔한 현실인 걸 감안하면 '더 사랑할 용기'란 책이 떠야 정상일 것 같은데 엉뚱한 제목의 책이 잘 팔리고 있다. 내용은 둘째이고 책 제목에 사람들의 손이 우선 가지 않나 싶다. 이전에 잘 팔린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처럼 무언가 우리의 허전한 마음을 툭 건드리는 끌림이 있나 보다. 아픈 것은 정상이니 꿈을 갖고 앞을 향해 도전하고, 그래도 너무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면 삶이 피곤하니 가끔 멈춰서 옆과 뒤도 바라보고, 그래도 힘들면 미움 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심리 처방이 단계별로 유행인 모양새다.

정말 미움 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은 비정상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남에게 일부러 해코지를 해 미움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사실 반(反)사회적인 행동의 이면에도 타인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무의식이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 전 일어난 우리 예비군 총기 사고, 그리고 미국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는 모두 20대 초반 청년이다. 추측하건대 자기 정체성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건강한 자기 정체성은 타인과의 긍정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타인의 관심이 나에게 비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자신이 사라지는 고통을 느끼게 되고, 불안정한 성격을 가진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 남을 해치는 행동까지 나올 수 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취직한 20대 후반 남성의 고민이다. 서울에 지인도 없고 적적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의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 글에 댓글이 달리면 관심을 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멋진 글과 사진을 올리려고 애썼고 노력의 대가로 댓글도 많이 달리는데도 허전하고 외로운 감정이 다시 더 크게 몰려왔다는 것이다. SNS의 성공은 우리 안에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있다는 증거다. 앞의 사연에서 SNS를 이용해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은 아니다. SNS 안에 내가 만든 새로운 '나'가 실제 나와 멀어진 것이 이유다.

내성(耐性)이란 관심 중독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내성은 뇌에 행복감을 주기 위해 점점 더 큰 자극을 주어야 하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가짜 행복이기에 점점 센 가짜 자극을 줘야 유지되는 것이다. 가상(假想)의 나와 실제 나의 차이가 클수록 관심 중독의 부작용은 심해진다.

'미움 받을 용기'보단 '좋아하든가 말든가 있는 그대로 날 보여 주는 용기'란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심리학적 용기'라고 한다. 심리학적 용기는 내 속내를 있는 그대로 열어놓을 수 있는 '깡'을 이야기한다. 나한테 잘하는데도 괜히 그 사람이 싫은 경험을 하지 않는가. 반대로 별로 나한테 잘하는 것도 없는데 끌리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든 사람이 날 다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겠단 목표를 갖다 보면 작은 무관심에도 더 좌절하게 되고, 모두의 관심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랑받기 위해 가공된 나에 대한 관심이기에 고독감만 더 크게 몰려오고 관심 중독마저 생기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를 죽이고 용기를 내어 내 속내를 드러낼 때 인생의 친구를 한 명이라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그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은 외롭지 않다.

심리학적 용기를 갖기 위해선 삶의 방향이 타인의 관심이 아니라 가치를 좇아야 한다. 삶의 가치는 삶의 목표와 연관되어 있다. 결국 진정한 심리학적 용기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