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나의 이야기 396

대상포진

오일 전부터 등 쪽에 빨간 발진이 생기며 가려워서 연고도 발라보고 잠 잘못 잔 것처럼 결리는 것 같기도, 기분 나쁘게 우리하여 파스도 붙여 봤지만 소용없었다. 다른 증세는 없어 그깟 등짝 좀 아픈 거야 며칠 지나면 낫겠지 했다. 오늘 혈압약 타러 병원 간 김에 의사 선생님께 저는 이상하게 등 쪽이 이러저러하다고 말씀드리니 어디 좀 보자고 하길래 속옷을 올려 보여 줬더니 두 번도 안 보고 대상포진이란다. 헉, 대상포진은 따갑고 아프지 않나요? 저는 가려워서 더모베이트 연고와 파스를 붙였었는데요. 며칠 됐느냐고? 오일은 지난 것 같다고 더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거라며 72시간 내에 오시면 바로 치료가 되는데 잘못하면 6개월 정도 갈 수 있다고 항바이러스 균 퇴치하는 처방약 하루에 3번 꼭꼭 드시라고 하며 통..

나의 이야기 2024.03.27

알렉세이 나발니

명동에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어 가는 길, 러시아 작가 푸쉬킨 동상 앞에 꽃다발이 쌓여 있기에 뭔 일이지 궁금해 올라가 보니 러시아 민주화의 상징인 나발니가.. 추모의 주인공이었다. 서울의 번화한 거리에 이웃 나라 영웅을 기리는 고마운 마음들에 숙연해졌다. 하얀 플라스틱 촛불 형상은 찬바람에 나부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꽃 한 송이 준비 못한 나는 하나하나 주워서 고인 앞에 가지런히 놔주고 가방에서 물 후지 꺼내 나 발디의 비바람에 얼룩진 액자와 사진을 닦아 자세를 바로 잡아 주었다. 몸도 마음도 잘 생긴 사람! 부디 독재 없는 별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내려왔다. 만물이 생성하는 계절에 안타깝게 스러진 벽안의 러시안인 불의에 저항한 자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자 진실로 강한 자 바..

나의 이야기 2024.03.21

제비가 보고 싶다

우리 집 봄은 노란 개나리 울타리에서 시작되었다 죽은 듯했던 나뭇가지에 노란 물이 돈다 싶으면 금세 샛노란 울타리로 변했다 나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삿갓만 한 초가집이 아니고 안채 뒷채, 그리고 3백 평 텃밭을 거느린 집이었다. 삼월삼진은 강남 갔던 제비들이 봄을 물고 오는 날. 텃새인 참새들 노는 마당에 어느날부터 밀쑥한 제비들이 나타나 지붕 위를 빙빙 돌다가곤 했다. 새끼를 부화시킬 적합한 장소가 어딘지? 작년에 자기들이 낳고 자란 집을 찾는지 제비 속 마음은 모르지만 몇 날며칠 하늘을 비행. 드디어 번지수를 찾았는지 바닥 지저분한 흔적에 눈치 챈 아버지는 마루밑에 있던 베니다판을 꺼내 톱으로 자르고 다듬어 둥지 밑에 대주셨다. 일 년 만에 만난 환영 인사고 집 지을 건축 자재 흙이나 볏짚등을 받아내..

나의 이야기 2024.03.02

할머니 잘못 아닙니다.

이 글은 옛날 10년도 더지난 . 저를 딸처럼 챙겨주시기에 저도 친정어머니처럼 따랐던 이웃에 사셨던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잘못이 아닙니다. 벨을 누르자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은빛 머리에 꼿꼿하게 올이선 하얀 모시 적삼을 입은 95세 어른이다 건강한 모습에 "할머니, 건강하시네요라고 인사를 드리니-그렇죠 뭐-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파야 정상인데 난 왜 아픈 데가 없는지 몰라 이 귀신같은 꼬락서니로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몰라. 건강한 것이 죄인양 정색을 하고 말씀하신다 "할머니! 요즘 유행어가 있어요 "구구팔팔이삼사라고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다 돌아가시는 거 말하는 거예요" -그건 팔자 좋은 늙은이들이나 하는 말이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로 사는 나에겐 해당되는 게 아니에..

나의 이야기 2024.02.20

나만의 책 만들기

지난해 끝자락, 동네 평생 학습관 프로그램에 "포토북 만들기" 강좌가 올라왔다. 책을? 어떻게? 내가? 무겁고도 낯선 장르다 살아가는 생기가 점점 약해져 갈 때 뭐라도 부딪쳐보자 신청을 했다.출판의 문턱을 낮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나만의 독립출판 플랫폼을 교보문고 퍼플에서 제공해 준다는 강사님 서두다. 수강생 10명 여행, 사진, 육아, 그림, 시, 에세이, 등산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도전!. 가이드 자료 PDF를 다운로드하여 강사님 따라 필요한 자료 꺼내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강사님은 그러셨다 간판 만드는 어느 분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설득력 있게 아들에게 남겨주려고 독창적으로 책을 만든 분도 계셨다고... 나는 세상과 관련된 기술도 없고 이 시대 키워드도 아닌 지난 십여 년 손녀딸 둘을 키우..

나의 이야기 2024.01.16

뒷모습이 아름다운 부부

부부의 걷는 뒷모습이 어찌 편안한지 신문에서 찍어왔다. 1983년 김녕만 사진작가 작품이다. 서로 손을 잡거나 유난스럽지 않아도 소박하고 듬직한 부부의 뒤태다. 눈길에 고무신이 차갑고 미끄러울 텐데도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담담히 걷는 아내와 새끼줄 멜빵이 어깨를 짓누를 법도 하련만 대수롭지 않게 아내와 보조를 맞추며 걷는 남편. 각자의 짐을 자신에게 맡는 방식으로 감당하며 한 목적지를 향해 걷는 부부의 모습이 잃어버린 옛 풍경을 다시 만난 듯, 반갑기도 왠지 서럽기도 하다. 가슴 뭉클 한 이 사진을 자꾸 보게 된다. 40년 전이니 이 부부는 생존해 있을까?.

나의 이야기 2023.12.14

서울은 축제장

우주 행성이 내려앉은 듯 서울은 별잔치가 한참이다.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거리도 들뜨고 사람들도 들뜨고... 일요일 오후, 집에서 할 일도 없고 명동 칼국수나 먹으러 가자고 남편과 길을 나섰다. 시청에서 도서 반납하고 명동 가는 길 벌써부터 길이 화려하다. 저작권과 소음 문제로 크리스마스 풍경, 캐럴은 없어진 지 오래~~ 반짝이로 대신했나 보다 허공에 나뭇가지들도 반짝반짝. 빌딩들도 광고판으로 번쩍번쩍. 백화점 쇼윈도와 대형 트리에는 별빛보다 더 영롱하게 반짝였다 사람들도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아니 반반. 낯선 거리, 여기 서울 맞아 둘이 쿡쿡대며 밀려다녔다. 비행기도 아닌 지하철 타고 유럽의 어느 화려한 도시에 온 느낌이다. 인증샷 찍으랴 길을 멈춰도 서로 몸을 부딪쳐도 그러려니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다...

나의 이야기 2023.12.10

가을은 위에서..

추석이 지나고 나서야 지상에 완연한 가을이 장착되었습니다. 비도비도 그렇게 오더니 온갖 오염물질 구석구석 씻어 냈는지 아파트정원 나무들 사이를 스쳐 온 맑은 가을바람은 세상을 온통 산소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옷깃을, 살갗을 살랑살랑 건드리는 기분좋은 감촉 지나간 폭염에 얼마나 힘들었냐며 위로해 주는 듯합니다. 봄은 밑에서 오고 가을은 위에서 오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작년에도 그랬듯 나는 오늘도 하늘을 보고 고맙다고 웃었습니다. 끄떡하면 아래역으로 윗역으로 애들 데리고 여행 다니던 아들이 웬일로 빨간 글씨 긴 연휴에도 집에 있네요. 다녀봐도 서울이 젤 좋다라는 걸 느낀 거 같습니다. 하루 걸러 세 번을 우리 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한 번은 은진이가(며늘) 코스트코에서 사 온 퓨전 음식들 진공팩에 (꼴뚜기..

나의 이야기 2023.10.18

모기

저게 뭘까? 먼지일까 모기일까 욕실에 걸려있는 수건 끝에 없던 점이 보인다. 앉아서 째려본다 쳐다만 보다 화르르 날아가는 불상사가 생기면 낭패잖아 일단 때려 보자 작전을 세워야 한다. 진짜 모기라면 내 굼뜸으로는 어렵다 왜냐면 벽에 붙어 있는 게 아니고 수건과 벽사이가 십 센티는 떠 있는 상태라 그렇다. 잠자는 남편 깨우기도 그렇고 밖으로 모기채를 가지러 가자니 그새 날아갈 게 뻔한 일. 내 손바닥을 믿어보자 숨을 모으고 기를 모아 희끄름한 물체를 힘껏 내리쳤다. 친 상태에서 한번 더 비볐다. 쿠션 있는 수건과 벽 사이에서 기절했다가 손을 떼는 순간 날아가 버리는 모기의 순발력을 알기 때문이다. 놓쳤을 거야 별 기대 안 하고 손바닥을 서서히 뒤집었다. 헉! 빨간 피가 벽에도 손에도 선명하게 묻었다. 짜브..

나의 이야기 2023.09.13

뭐가뭔지 모르겠다

어젯밤까지도 잘 보던 넷플릭스가 갑자기 오류가 생겼다며 화면이 캄캄하다. 왜일까? 나름 노력 했는데도 도무지 복구가 안된다. 할 수 없이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냈다. "계정 페이지로 가보셔요" "갔었지 근데 뭔 말인지 모르겄어" "그 화면 사진 찍어 보내주세요" "이 화면 말고 넷플릭스 계정요" 크롬 말고 익스플로러나 에지로 넷플릭스에 접속해 보세요 내가 찍어 보낸 화면을 보고 뭐가 문젠지 알았는지 이 화면이 올라왔다. 영상에 순차적으로 설명은 나오는데 화면이 어찌 빨리 바뀌는지 찰라를 잡으려고 심호흡도 해봤지만 따라가다 놓치고, 깨알만 한 글씨에 조준한 글자도 놓치고,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에 막히고, 잘못 클릭하면 더 큰 고장이 생길까 망설이고 쩔쩔매다 "소경이 뒷걸음치다 쥐를 잡았다"는 격으로 드디..

나의 이야기 202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