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그 누구도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동의도, 허락도 없이 우리는 그저 어느 날 우연히 태어났을 뿐이다. 더구나 태어나서 눈을 떠보니 누구는 재벌 2세였고 다른 누구는 길에 버려진 고아였다. 그렇다면 인생은 한판의 로또일까? 물론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선택한 것이 인생이 아니라 살며 만들어지는 것이 나의 자아일 테니까. 일본에서 태어나면 일본인이 되어 일본을 지지할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면 서슴없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참수하는 극단주의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오늘날 존재하는 '나'는 가능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다른 존재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것이다.
물론 나도 재벌 2세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매우 유감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시리아 난민으로 태어날 수도, 아니면 항생제도 냉장고도 없던 500년 전 누군가의 노예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 138억년 전 우주가 만들어질 당시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할 확률은 거의 무한으로 작았다. 무의미와 무질서로 가득한 우주 한구석에 떠다니는 너무나도 희귀한 '나'라는 존재. 금수저로 태어났든 흙수저로 태어났든 우리 모두 불확실성의 우주를 무릅쓰고 태어난 영웅인 것이다.
'수저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이 인기 있을 정도로 '헬조선'을 원망하는 많은 젊은이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입 닥치고 열심히 일이나 하라"는 꼰대 같아 보일 수 있겠다. 그래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용기를 가져도 된다고. 인생은 주어지는 것보다 만들어지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이 물론 대박은 아니겠지만, 최악의 '꽝' 역시 아니라고. 그리고 이미 138억년 된 우주와 싸워 이긴 스펙을 가진 '나'라는 존재는 충분히 인생의 윷판에서 도를 모로 역전시킬 수 있는 저력도 가지고 있다고.
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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