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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주변의 비겁함이 키운 최순실

앤 셜 리 2016. 11. 9. 06:47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도대체 어떤 관계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최씨가 기업 돈 774억원이 모여 만들어진 미르·K스포츠 재단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고, 나아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소문으로 나라가 들썩이니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2003년부터 박 대통령을 취재하면서 10년 넘게 그 주변을 지켜봐 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 '밤의 말벗' 혹은 '비선 실세'로 명명된 최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최씨가 정말 대통령을 쥐락펴락하는 실세라면 그동안 '헛'취재만 한 셈이다. 그런데 친박 핵심 인사들도 하나같이 "최씨를 본 적 없다"고들 한다. 그들 역시 지금까지 '헛'친박을 한 모양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실제 박 대통령과 최씨가 40년 지기로, 상당한 친분 관계일 수 있다. 1979년 10·26 이후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렸을 때 최씨가 박 대통령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박 대통령이 최씨를 혈육보다 더 믿고 의지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최씨가 청와대 관저를 무람없이 드나들고, 인사(人事)를 좌지우지한다'는 유(類)의 설(說)도 돌았다. '지라시'로 치부됐던 이런 얘기들은 최근 두 재단 설립에 최씨가 개입했다는 팩트가 드러나면서 덩달아 사실의 지위로 등극할 태세다. "역시 그랬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꽤 있다.

그러나 두 사람 관계가 약간의 사실에 상당한 거짓이 버무려진 과장일 가능성 역시 작지 않다. 필자는 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실제 두 사람 관계는 잘못 알려진 대목이 많다. 대표적인 게 2006년 지방선거 때 피습당한 박 대통령을 최씨가 간호했다는 얘기다. 사실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이 사실로 알고 있다. 최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부풀려 말하고 다닌 것 같다. "연설문을 고쳤다"는 얘기도 그렇게 나왔을 수 있다.

한 친박 핵심 인사는 "최씨가 박 대통령의 패션, 건강 등 사적인 영역에서 조언하고 돕는 인사 중 하나인 것은 맞다"고 했다. 최씨는 대통령이 들고 다닐 가방을 청와대로 밀어 넣거나 운동 트레이너를 소개하는 것으로 자기 영향력을 은근히 과시했고, 많은 이들이 알아서 기었다. 최씨 딸 이화여대 입학·학사 의혹이나 미르 재단 사태 이면에 정치권·정부·재계 인사들이 필요 이상 굽실거린 흔적이 남아있다.

최씨가 정체불명의 인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문화 융성" 운운할 때 그 누구도 최씨 얘기를 대통령에게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 혹자는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겠거니 추측했고, 어떤 이는 최씨를 언급하는 게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애써 외면했다. 무턱대고 최씨를 비호하기도 했다. 지난 국정감사 때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이 최씨를 증인으로 세우려 하자 결사적으로 막았다. 최씨는 사각(死角) 지대에 방치된 채 '성역' 혹은 '비선 실세'가 됐다. 대통령과 최씨의 실제 관계가 어떠한지는 상관없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친박 핵심을 자처하는 인사들은 아직 박 대통령에게 최씨에 대해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모른다" "나는 관계없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그런 비겁함이 최씨를 괴물로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