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어 주는 여자'다.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면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 앞에 앉아 책을 편다.
"표 1 가로 지명. 세로 거리. 가로 서울 인천 대구 부산…. 괄호 열고 3㎞ 괄호 닫고."
무슨 암호를 외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대상은 시각장애인들이다. 그래서 문장 속 단어뿐 아니라 쉼표·따옴표·느낌표 같은 문장 부호까지 '소리'로 바꿔낸다. 마치 그들이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책 안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글자를 말로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살려내는 게 내 역할이다.
내 일터는 집 근처에 있는 경기도 부천의 해밀도서관이다. 점자도서관인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청중을 위해 봉사한 지 만 6년이 됐다. 어느덧 익숙해져서"웬만한 성우 못지않다"는 과분한 칭찬도 종종 듣는다.
나는 미8군에서 38년간 일했다. 1967년 인천 미군 항만사령부 수송부 직원으로 시작해 부평의 미군 보급창 근무를 거쳐 1973년부터 서울의 미8군 인사처에서 채용관(personnel staffing specialist)으로 일했다. 미군 부대에서 일할 미국인 직원과 한국인 직원을 뽑는 게 내 업무였다.
7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다.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에 대학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취업을 하려 해도 연줄이 없으니 일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고민 많던 그 시절 하루는 무심하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방송을 듣던 중 한마디 말이 귀에 박혔다. "보이즈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 말이 내 가슴 저 안에 웅크리고 있던 희망을 일깨웠다. 어딘가 배경이 필요 없는, 실력과 근면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영어 방송을 찾아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대며 나만의 방식으로 영어를 습득했다. 내게 영어는 생존을 위해 움켜잡고 있던 동아줄 같았다. 그렇게 독학하던 중 인천의 미군 노무청에서 운영하는 영어 교실이 있다는 걸 알게 돼 회화를 배우게 됐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영어 회화를 배우다가 직원 채용 공고가 걸린 걸 봤다. 보는 순간 이거다 싶어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단번에 시험에 통과했다.
미8군 시절, 내 영문 이름 'YC KIM'은 '성실함'으로 통했다. 단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주변에서 미제 면세품을 사달라고 할 때면 잘라 말했다. "남대문에 가면 훨씬 더 많이 있는데 왜 꼭 여기서 사?"
정년퇴직 때 후배들은 환송회를 해주겠노라 했지만 사양했다.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울음범벅이 될 게 뻔했다. 아주 조용히, 처음 출근하던 날 그 마음 그대로, 여느 날처럼 사무실을 나섰다.
막상 회사를 나오니 막막했다. 아이들도 다 키웠기 때문에 더 일할 생각은 없었지만 38년간의 달리기를 하루아침에 멈추자니 어색했다. 막연히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터라 무작정 집 근처 점자도서관을 찾아갔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마침 '녹음 봉사'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낭독해 녹음하는 일이라 했다.
문득 40여 년 전 나의 새벽을 깨워주던 라디오가 떠올랐다. 얼굴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끌려 내 꿈을 찾던 시절이 희미하게 떠오르며 내 목소리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길로 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전공을 살려 번역 봉사도 한다.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이 한국의 후원자에게 보내는 감사편지를 번역하는 일이다. 밥벌이를 위해 갈고 닦았던 영어 실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 같아 보람차다.
봉사를 해보니 '없는 것'과 '있는 것'이 각각 두 가지 있다. 없는 것은 스트레스와 정년이고, 있는 것은 기쁨과 보람이다. 묵혔던 재능이나 자신도 모르게 축적했던 재능을 잘 살펴보면 누구나 나름의 봉사를 할 수 있는 밑천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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