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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⑤ 청실홍실 : ‘라디오연속극’ 주제가 - 히트곡이 되다

앤 셜 리 2011. 12. 17. 21:41

 

‘방송국 전속가수’ 를 아십니까?

 

 

⑤ ‘라디오연속극’ 주제가. 히트곡이 되다

 

 

이쯤 해서 ‘해방 60년’을 맞아 대중음악의 굵직한 사건을 정리하겠다는 이 기획의 의도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중간은 생략하고, 60년 기간의 시작과 끝을 비교하면서 격세지감을 느껴 보자. 그러면 구호물자에 연명하던 나라에서 좌우지간 순원조국으로 바뀌고, 인구가 바글바글하던 나라에서 ‘출산율 세계 최저 수준’의 나라로 바뀐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대중가요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해서 비탄과 탄식을 주조로 하던 ‘유행가’가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찬미하는 ‘K-pop’으로 바뀐 모습이 선명하다. 물론 지배적 형상이 그럴 뿐, 자세히 속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대중음악의 60년 사이의 변화에서 또하나의 대조적 이미지는 ‘방송’과의 관련이다. 현재의 대중음악의 지배적 형식이 ‘방송 출연’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은 새삼 강조하는 게 면구스러울 정도다. 다행이든, 불행이든, 언제부턴가 대중음악을 경험하는 지배적 방법은 ‘TV를 시청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60년 전쯤에는 어땠을까. 가요평론가 고(故) 황문평의 증언을 들어 보자. “서울중앙방송국이 호출부호도 새롭게 HLKA로 되면서 음악 프로그램 포맷도 현대화되어갔다. 방송국에 전속경음악단을 두고 무대나 레코드에만 의존하던 종래의 가요 보급이 전파로 실리게 되었다”.

하나 더. “각 가정에 신속한 보도와 더불어 음악과 극 등, 교양과 오락을 더해서 즐거운 방송을 보내고 있는 H.L.K.A 서울 방송”(<대한뉴스>, 제 93호, 1956.10.)이라는 공보영화의 멘트도 함께 인용해 두자. HLKA나 서울방송이 현재의 한국방송과 연관된 것이라는 점, 그리고 당시에는 방송국이 한국방송밖에 없었다는 점을 짚어 두자.

 

 

방송국 전속경음악단은 그리 생소한 명칭은 아니다. 그런데 ‘방송국 전속가수’는 이제 아주 생소해져 버렸다. 당시는 마치 방송국 직원 모집하듯이 시험을 거쳐 가수를 모집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 제도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송민도, 금사향, 원방현, 고대원 등이 초기의 방송국 전속가수로 이름을 올린 인물들로 기록되고 있다. 전쟁과 분단을 거친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안다성, 권혜경 등이 다시 이름을 올리고, 그 뒤로는 인기가수의 경력을 이어간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송민도, 안다성, 권혜경의 이름으로 이들의 노래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악극단이나 댄스홀같은 ‘일반무대’에 올라가는 ‘딴따라’와 달리, 격조와 품위가 있는 ‘방송무대’에 어울리는 인물들이다(물론 나는 ‘딴따라’를 멸시하는 사람들을 멸시한다).

 

 

한국방송밖에 없던 시절 방송가요를 상징하는 곡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1956년에 발표된 ‘청실홍실’일 것이다. 송민도와 안다성이 듀엣으로 노래하고, ‘시온성(詩溫城) 혼성합창단’이 뒤를 거든 이 곡은 그 뒤로 오랫동안 ‘결혼식 축가’로 애송된 곡이다. 이 곡의 기원을 추적하면 역시 지금은 거의 멸종된 문화형식이 발견된다. 이른바 라디오 드라마, 당시 용어로 ‘연속방송극’이다. ‘드라마를 왜 텔레비전에서 하지 않고, 라디오에서 했을까’라고 물어보는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젊은 축에 속할 것 같다. 이유는 생략. 한편 ‘청실홍실’을 정윤희, 한진희 주연의 텔레비전드라마로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은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 아닐 것이다.

 

 

각설하고 드라마 주제가인 ‘청실 홍실’은 라디오 전파를 통해 히트하는 대중가요의 전범이 되었다. ‘3박자의 리듬과 7음계의 멜로디’는 ‘2박자 리듬과 5음계 멜로디’를 벗어나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드라마 주제가이든 아니든 ‘방송전파를 타는 고품격 가요는 이래야 한다’는 하나의 전범을 만들어 냈다. 당시 발표된 ‘3박자 7음계’의 곡들 가운데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두 곡을 더 나열하면 기억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산장의 여인’, ‘나 하나의 사랑’ 등등.

 

 

‘청실홍실’의 작사가 조남사는 유호, 한운사와 더불어 방송 드라마 초기의 작가로서 이름을 날린 사람이고, 작곡가 손석우는 당시 한국방송의 대중가요 방송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KPK 악극단의 기타 연주자였던 그는 피난 시절을 전후하여 ‘청춘고백’(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꿈 속의 사랑’(중국 곡, 현인 노래) 등에서 사랑의 복잡한 심리를 묘사한 가사를 쓰면서, 가요 작가의 경력을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패티 페이지의 ‘눈물의 월츠’의 한국어 작사도 그의 솜씨였다. 송민도를 ‘한국의 패티 페이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 역시 송민도가 노래한 ‘나 하나의 사랑’은 ‘청실홍실’ 이전인 1955년께 발표된 곡인데 이때는 당시로서 이례적으로 작사와 작곡을 모두 맡았다. 당시의 방송은 아직 걸음마 단계였지만, 방송을 새로운 무대로 했던 손석우의 활동은 이후 방송이 대중음악에 미칠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신현준/대중음악 평론가

 

 

  

 

 

청실 홍실

 

 

청실 홍실 엮어서 정성을 드려
청실 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
티 없는 마음 속에 나만이 아는
음~ ~ ~음~ ~ ~  수를 놓았소

인생 살이 끝없는 나그네 길에
인생 살이 끝없는 회오리 바람
불어도 순정만은 목숨을 바쳐
음 ~ ~ ~음 ~ ~ ~간직했다오

청실 홍실 수 놓고 샛별 우러러
청실 홍실 수 놓고 두 손을 모아
다시는 울지 말자 굳세게 살자
음 ~ ~ ~음~ ~ ~ 맹세한다오

 

 

 

출처 : 딴산
글쓴이 : 한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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