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의 올해 예산이 약 3조원인데 인문사회학 지원은 합쳐서 1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런 빈사(瀕死) 위기 상황에서 400개 인문학 단체가 함께 좀 더 힘 있는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72학번 긴급조치세대 운동권 출신 김혜숙(58)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다시 '운동권'이 된 듯했다. 오는 26일 창립대회를 여는 한국인문학총연합회(인문총) 5인 공동회장 중 대표회장을 맡아 '전의(戰意)'를 다지고 있다. 지난 7월부터 한국철학회·영어영문학회·국어국문학회·중어중문학회·한국언어학회·종교학회·서양사학회·동양사학회 등 주요 8개 학회 대표들과 준비 모임 끝에 결실을 눈앞에 뒀다. '문사철(文史哲)' 인문학의 또 다른 축인 역사학회는 내부 의견 조율 때문에 아직은 보류 상태다.
그는 지난 8월부터 한국철학회장도 맡고 있다. 내년이 60주년인 한국철학회에서 여성 회장은 처음이다. 대학 시절 이화여대에 철학과가 없어 기독교학과에서 철학석사를 하고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지금도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철학과에는 여성 교수가 없어요. 예전엔 학회에서 여성 연구자가 질문하면 농담하듯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요."
김 교수는 "한국이 중진국 지위까지 오른 성장의 모태가 바로 인문적 전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도구적 사고방식에 밀려 홀대받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반값 등록금 같은 정치 이슈가 터져도 인문학 예산에서 재원을 빼갑니다. 인문학 기반은 있던 것마저 허물어질 상황이지요."
학계에서 '인문학 위기론'의 목소리가 높은 반면 일반 대중 사이에서 '인문학 열풍'이 뜨거운 건 어떻게 봐야 할까. 김 교수는 "예전 종교가 채워줬던 정신적·지적 허기를 인문학에서 찾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초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열악한 상황입니다. 인문학의 전통적 역할은 훈장(교사)이었지만 교사의 80~90%를 사범대 출신이 차지하면서 인문학도는 사교육 시장에서 학원강사로 전전합니다. 인문학 학과 통폐합 등으로 학문 후속에도 장애가 있음은 물론이고요."
그는 이것이 인문대학만의 문제도 인문학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라 했다. "요즘 국가의 품격을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것이 인문적 사유입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바람직한가에 대한 답은 결국 인문학에서 찾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인간적 가치와 관심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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