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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초점] 내가 낸 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앤 셜 리 2013. 1. 1. 20:51

고아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때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성당에 보내왔다. 아내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원한 털모자와 머플러를 보냈다. 아이들은 큰 종이에 감사의 마음을 적어서 보내왔고 성당 벽에 걸렸다. 털모자를 받은 학생이 쓴 글도 있었다. 고맙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아내는 '내가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을 줬구나, 더 도와야 하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 말라위 어린이에게 매달 얼마씩 후원하니 어린이와 그 엄마가 가끔 편지와 사진을 보내온다.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공유하니 한층 친밀한 느낌이 든다.

요즘 복지단체들은 이렇게 기부자와 피기부자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고 있다. 단돈 100원이라도 어디에 썼는지 기부자는 알고 싶어한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야 다음에도 기꺼이 기부하게 된다.

세금 내는 일도 이랬으면 좋겠다. 아무리 많은 세금을 내도 보람 있는 일에 투명하게 쓴다면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엉뚱한 데 쓰고 공돈인 양 낭비하니 억울한 것이다.

양극화 해소가 시대의 과제가 됐고, 사회 안전망 확충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정을 납세자라고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이다. 어디에, 왜 돈을 더 써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일방적으로 정하고 본다.

택시법을 보자. 많은 국민이 "기본요금이 2400원이고, 고작 4명이 타는 택시가 왜 대중교통이냐" "승차 거부하는 대중교통이 어디 있느냐"며 불만이 많은데, 여야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지정해 연 1조9000억원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금융 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춘 여야 합의에도 납세자는 안중에 없어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은 당초 3000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야당과 2500만원 수준으로 협상하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2000만원이 됐다. 3000만원일 때 과세 대상자가 됐을 3만명이야 마음의 준비를 했을지 모르지만, 2000만원으로 내리면서 추가로 대상자가 된 11만명은 억울한 마음이 들고도 남는다.

돈을 더 벌고 싶으면 물건값을 올리면 되는 식이라면 누가 장사를 못할까.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고객이 스스로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증세(增稅) 바람이 거세다. 경제 위기 극복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부의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부에 고객 서비스 마인드가 절실히 요구된다. 복지의 수혜자도 정부의 고객이지만 납세자도 정부의 고객이다. 꼭 필요한 곳에 세금을 아껴 쓰고, 충분히 설명도 해서 세금 낸 이가 아까운 기분이 덜 들게 해야 한다.

복지 혜택을 확대해 국민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원치 않는 사람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 부자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은 가욋돈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이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사람들에게 간다면 누가 세금을 내고 싶을까.

또 세금이 중간에 줄줄 새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이상은 정부가 효율적일 때만 실현 가능하다. '복지 전달 체계'의 선진화가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세금을 어디 썼는지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이 납세고지서를 받아들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만 아니라 간간이 세금 사용 내역서도 받아 보면서 흐뭇해하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본다. 세금을 낼 때도 기부할 때처럼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