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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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기다리던 네가 이토록 그리울 줄…

앤 셜 리 2014. 9. 28. 19:43

자스민, 어디로 가니?|김병종 글·그림|열림원|162쪽|1만2800원

'화첩기행'의 김병종은 다시는 잡문을 쓰지 않겠노라 다짐한 터였다. 이 책으로 다짐은 산산조각 났다. 그는 '자스민'을 빙자해 글을 다시 쓰겠다고 나섰다. 16년 세월을 함께하고 떠나 보낸 암컷 애완견 포메라니안이다.

강아지 얘기를 쓰되 자신의 삶을 돌아본 에세이다. 자스민의 시선으로 가족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자스민이 이 집에 와서 배운 세 마디 말은 "안 돼" "밥 먹어" "산에"다. 실수로 오줌을 지리면 여기저기서 "안 돼" 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어"라는 말 다음에 식탁에서 오순도순하는 시간, "산에"라는 말 다음에 펼쳐지는 야외의 시간이 좋았다. 제일 좋아한 소리는 비닐봉지를 뜯어 치즈나 초콜릿을 꺼낼 때 나오는 '슉슉, 샥샥'이었다.

자스민이 보기에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은 김병종이다. 소파에 벌렁 드러눕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벌렁 드러눕는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아저씨 여행가방은 늘 아줌마가 싼다. 자스민은 밖에 데리고 나가면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자스민, 어디 가?"라는 말을 달고 살다시피 했다. 두 아이가 입시 준비를 하느라 새벽녘에 학원에서 돌아오던 때 자스민은 어두운 현관 신발장 옆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짖어대며 발치에서, 서재에서, 산길에서 옆에 머물던 자스민은 급성 췌장염으로 숨을 거뒀다. "곁에 있을 땐 그 작은 생명체의 가치에 대해 몰랐다"고 김병종은 고백한다. 자스민이 남기고 간 견고한 유대감이 책장마다 스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