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업가 하인리히 오스발트(1917~2008)는 연매출 4조원의 다국적 식품회사 임원을 거쳐 스위스 최대 민영 미디어그룹 CEO를 지냈다. 평생 한 여자와 해로하며 두 아들을 낳았다. 여든 넘어 부인과 사별한 뒤로는 동년배 여자친구와 잔잔한 황혼 로맨스를 즐겼다. 그런 그가 91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자택에서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자살이었다.
오스발트의 자살은 고정관념과 들어맞지 않는다. 외로운 것도,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올 초 미국 오리건주에서 스물아홉 살 말기 암 여성이 의사가 처방한 독극물을 삼킨 적이 있다. 오스발트도 정확히 같은 방식을 취했지만 미국 여성과 달리 불치병도 없었다. 고혈압 등 몇 가지 지병이 있었지만 그만하면 정정했다.
그는 오로지 "삶에 포만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자살을 택했다. 충분히 살았으니 그만 떠나겠단 얘기였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적 고령 자살(old age rational suicide)'이라고 요약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곡기(穀氣)를 끊는 것이 그나마 근접한 개념일지 모른다.
사진작가인 차남 울리 오스발트(62)는 아버지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본 뒤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라는 책을 썼다. '한국인의 마지막 10년' 시리즈를 취재할 때 한국어판이 나왔다. 읽고 찡했지만 동시에 울컥했다. 스위스에 이메일을 보내 "왜 안 말렸느냐"고 물었다. 울리는 "아버지는 누가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고인은 마지막 1년 동안 자기 삶을 침착하게 정리했다. 자살 결심을 자식들에게 털어놓고 참을성 있게 설득했다. "가족 말고 다른 사람에겐 함구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친구들을 초대해 마지막 생일잔치를 했다. 자기 부음을 보낼 명단을 스스로 작성했다. 그는 아들에게 "장례식을 단출하게 치르라"고 일렀다. 장례식 때 연주될 추모곡도 직접 골랐다. 트럼펫 주자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명곡 '밤하늘의 트럼펫'을 불었다. 고인과 절친했던 사람들이 숙연하게 귀를 기울였다.
이메일에서 울리는 "아버지는 자기 삶을 저울에 달아보고 '계속 살 만큼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장차 닥칠 장애를 면하기 위해, 의료진에 의존하는 상황을 면하기 위해, 친구들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면하기 위해…. 아들이 보기에 아버지는 이런 많은 것을 면하기 위해 먼저 비상구를 찾았다. 울리는 "내가 슬프다고 아버지를 억지로 붙잡는 게 오히려 부도덕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조력(助力)자살이 옳은가 그른가 여기서 논할 생각은 없다. 조력자살을 합법화한 나라는 스위스와 벨기에를 포함해 한 손에 손꼽을 정도다. 울리의 말 중에 우리가 정작 귀담아들을 대목은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마지막 1년 동안 부자는 깊은 얘기를 터놓고 했다. 그 추억이 아들을 성장시키고, 남은 생애 내내 아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울 것이다. 울리는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더 이상 공포스럽지 않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신문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奇蹟(기적)의 배'를 기억하십니까 (0) | 2015.01.03 |
---|---|
[내가 모르는 내 아이] 전문가가 말하는 부모의 조건 (0) | 2015.01.03 |
존 레넌이 상상했던 세상 (0) | 2014.12.10 |
내몸이 법당,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돌보라 (0) | 2014.11.29 |
종교, 아 그래? (0) | 2014.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