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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的 소통이 뜬다

앤 셜 리 2016. 4. 1. 20:38

쏟아지는 논리적인 소통과 설득에 우리 마음이 지쳐서일까, 덕담에도 이유 모를 저항감이 생길 때가 있다, "힐링하세요"란 권유를 받은 내 마음이 "너나 하세요"라고 답하니 말이다. 논리적인 소통이 있다면 시적(詩的) 소통도 있다. 때론 우리는 긴 조언보다 짧은 시에서 뭉클한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 실제로 시적 소통, 즉 메타포(metaphor) 커뮤니케이션이 심리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메타포, 즉 은유는 원관념의 속성을 보조관념을 이용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시적 소통이 논리적 소통보다 때론 더 쉽게 내 생각을 상대방 마음에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생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인생이란 단어가 추상적이어서 어렵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풀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은 여행이다'라고 인생을 원관념, 여행을 보조관념으로 표현하게 되면 여행이란 한 단어에 인생의 윤곽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여행이 인생이란 단어보다 더 손에 잡히고 눈에 잘 그려지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이 있고, 수많은 필연과 우연한 만남이 존재하는, 그런 여행의 특징이 인생에도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은유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뇌 안에 논리 언어로 작동하는 논리 컴퓨터 외에 상징체계를 쓰는 마음 컴퓨터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논리 컴퓨터는 우리 통제하에 있고 내용도 잘 들여다볼 수 있지만 마음 컴퓨터란 녀석은 잘 보이지도 않고 말도 잘 듣지 않는다. 마음이 불안할 때 불안하지 말라 명령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기 일쑤다. 하지 말라는 명령 자체에 마음이 공격받는 느낌을 받아 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 컴퓨터가 자신을 드러낼 때가 있는데 꿈이다. 자신의 꿈이 술술 해석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머리 안에서 만들어낸 영화인데 내가 이해가 안 되니 사실은 황당한 일이다. 어떤 예술 영화보다도 상징으로 가득 찬 어려운 영화를 만드는 컴퓨터를 내가 갖고 있는 것이다. 잘난 알파고도, 딥러닝을 통해 직관과 유사한 결정 능력을 보이고 있지만 꿈을 꾸지는 못한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만약에 꿈을 꾸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 무서운 이야기다.

과거 연애편지로 사랑을 고백할 때 사랑 시 한 편을 먼저 인용하고 다음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 경우가 많았다. 시적 소통이 프러포즈의 성공 확률을 올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던 것 아닐까. 고전 영화에 나오는 여심을 사로잡는 카사노바 캐릭터는 대부분 은유적 표현의 달인이다. '당신의 밝은 미소 뒤에 숨어 있는 슬픔을 내가 위로해 줄게요'가 한 예다. 요즘 먹힐 멘트는 아니지만 과거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인데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마음에 슬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은유적 표현은 논리를 넘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 가족과 함께 시 읽기를 권해드린다. 마음이 지쳤을 때 힘을 내라고 논리적으로 명령하는 것보다 시 한 편을 읽는 것이 더 촉촉하게 내 마음을 충전시킬 수 있다. 가족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에도 좋다. 좋은 마음을 갖고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논리적 소통을 나누다 보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결국 잔소리처럼 되기 십상이다. 온 가족이 시 한 편을 읽으며 그 느낌을 나누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녀에게 은유적 소통 능력을 키워줄 수 있고 가족 간 관계도 좋아진다.

최근 함민복 시인의 시 '부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시 한 줄 읽었을 뿐인데 갑자기 아내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