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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사물극장] (79) 조병화의 '파이프'

앤 셜 리 2019. 1. 11. 16:21

/그분을"지금 어디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위하여/묵은 의자를 내놓겠어요/먼 옛날 어느 분이/내게 물려주듯이"('의자')

 

터틀넥 니트 스웨터에 멋진 베레모, 재킷 윗주머니에 손수건을 꽂고 장미뿌리 파이프를 문 조병화(1921~2003)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60대 때 장 폐색 수술 뒤 타르로 시커멓게 오염된 흉강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돌연 담배를 끊었다. 그동안 모은 파이프는 주변에 나눠주었다.

 

1941년 경성사범을 거쳐 명문인 도쿄고등사범을 나왔다. 애초 문학이 아니라 물리학을 공부했다. 학창 시절에는 럭비 선수로 뛰었다. 해방 뒤 인천중학교를 거쳐 서울고등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던 1949년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내고 문단에 나왔다. 잇달아 펴낸 시집 '하루 만의 위안' '패각의 침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시(詩)를 '존재의 숙소'라고 했다.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시가 많이 나온다고 썼다. 하지만 해마다 시집을 펴낸 양산(量産)을 두고 폄훼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에 관여했다. 1979년에 나는 그 신춘문예로 등단의 꿈을 이뤘다. 그의 서울 혜화동 자택 인근에 살았지만 찾아가지 못했다. 1986년 이탈리아 피렌체 세계시인대회에 동행하면서 처음 인사를 했다. 그와 호텔방을 함께 쓸 때 그의 깔끔한 매너에 감탄했다. 생활 태도는 검소하고, 약속 시간을 잘 지켰다. 초청 편지나 광고지 따위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조병화의 호는 '편운(片雲)'이다. 그의 안성 생가는 '편운문학관'으로 개조되어 명소가 되었다. "고독하다는 것은/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고독하다는 것은') 인간 실존에 스민 고독,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시집을 펴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다재다능했다. 프랑스에 '장 콕토'가 있다면 한국에는 '조병화'가 있었다.

 

기고자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