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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분노로 글 쓰지만 '조폭 기고가'는 아녜요, 호호"

앤 셜 리 2019. 1. 11. 16:25

칼럼 모음집 '뉴스로 책 읽기' 낸 서지문 명예교수 '투사'가 아니라 '소녀'였다. 영문학자 서지문(71) 고려대 명예교수는 은발을 곱게 빗어 넘기고 수줍은 표정으로 인터뷰 장소로 들어섰다.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웅변하듯 권력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 왔지만, 뜻밖에 눌변이었다. 답변의 대부분이 "글쎄요"로 시작했다. 서 교수는 "원래 사람이 좀 어벙하다"며 "호호호!" 웃었다. 그가 지난 2년 반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한 칼럼 모음집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기파랑)가 최근 출간됐다.
 
조용한 인상과 달리 칼럼은 과격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살인마'라 부르길 서슴지 않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어서 틀어쥐는 것? 아, 생각만 해도 오한이…"라며 분개한다. 서 교수는 "돌려 말하는 걸 잘 못한다. 나오는 대로 쓰다 보니 직설적이 된다"고 했다.
 
서 교수의 칼럼은 보수 성향 국민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칼럼이 게재되는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아침부터 "잘 읽었다"는 전화와 문자를 받느라 바쁘다. 서 교수 스스로 '최고 인기 칼럼'으로 꼽은 '자유가 눈엣가시인 이 정부'는 이렇게 끝난다. "이 정부는 청와대가 트위터 날리면 일제히 '좋아요'를 누르고, 희대의 살인마도 대통령과 다정히 산책하고 껴안으면 아이돌 가수처럼 애호하는 생각 없는 국민을 만들기 위해 '자유'를 암매장하려나 보다." 이 글엔 "매번 칼럼을 읽고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는다", "촌철살인!" 등의 인터넷 댓글이 달렸다. 서 교수는 "많은 분이 내 글을 읽으면서 일주일간 묵었던 울분을 푼다고 하더라. 다른 분들의 기막힌 심정도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이 정부에 기막힌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안보 문제가 다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우리 북한 동포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흉인데 문재인 대통령도 그를 너무 애호하는 것 같이 보이고 이제 그를 민족의 영웅이니 뭐니 하는 철없는 국민도 나오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우편향이란 비판에 대해서는 "이런 시대에는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발표해야 한다. 내가 좌우를 조절해 쓰려고 한다고 해서 그게 국가라든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칼럼마다 책 한 권씩을 소개하며 현실과 연결짓는다. 제인 오스틴이나 찰스 디킨스 같은 고전은 물론이고 지난해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이었을 땐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 같은 최신작까지 소개했다. 그에게 여성주의는 정부 비판과 함께 중요한 주제다. 서 교수는 "페미니즘을 좌파의 어젠다로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내가 처음 교단에 섰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페미니즘이라는 건 힘 없는 여성들에 대한 연민이라는 보편성을 띠고 있었는데 그런 것까지 좌우로 편을 나누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고 말했다.
 
70대 우파이지만 자유한국당 지지자는 아니다. 그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대안이 없으니 더 비참하다"고 했다. "제가 늘 '조폭 기고가'인 건 아니에요. 아름답고
장난기 있는 글을 쓰고 싶고, 과거엔 그런 글을 쓰곤 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글을 쓰려면 분노가 앞서요. 전투적인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바뀌어서 다시 제 본성에 맞는 글을 쓰게 되길 바랍니다."
 
기고자 :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