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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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의자에는 몇 명 더 앉을 여유 남아 있을까

앤 셜 리 2018. 8. 22. 12:35

2000년 9월 14일 자 동아일보에 '노아의 대홍수는 실제… 흑해 해저에서 7500년 전 집 발견'이란 기사가 게재됐다. 외신을 인용했다. 1985년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발견했던 로버트 밸러드란 해저 탐험가가 있다. 그가 터키 연안에서 19㎞ 떨어진 흑해 바닥에서 7500년 전 인간 거주 흔적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7500년 전 흑해 수면은 지금보다 100m쯤 아래였다는 뜻이다.

 

3년 앞서 1997년 미국 컬럼비아대 두 교수가 '흑해 홍수 가설'을 제시했다. 흑해는 원래 지중해와는 분리된 민물호수였는데 7000~8000년 전 지중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가 오늘의 흑해가 됐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지중해~흑해 사이 협곡 수로인 보스포루스해협 부근에서 거대 폭포에 의해 형성된 웅덩이 흔적과 민물 갑각류 위에 짠물 갑각류가 겹쳐 있는 해저 퇴적층을 확인했다.

 

원인으론 지구 어디선가 일어난 거대 빙하 붕괴가 꼽혔다. 빙하 붕괴로 해수면이 일시에 상승하면서 지중해 물이 흑해 쪽으로 넘쳐 흑해 주변 15만㎢가 수몰됐다는 것이다. 이때의 집단적 기억이 '노아의 대홍수' 전설이 됐다는 주장이다.

 

정말로 지중해 물이 넘쳐 흑해에 대홍수가 났는지에 대해선 여러 반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빙하 동위원소 분석 등을 통해 지난 10만년간 6차례의 기온 급락과 22차례의 격렬한 온난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돼있다. 흑해 홍수를 일으켰다는 기후 급변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것들이다. 이 기온 급등락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거칠게 치솟거나 순식간에 고꾸라져 떨어지는 형태다.

 

그래서 이때를 '긴 풀(Long Grass) 시대'로 부르는 학자도 있다. 거친 풀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다는 뜻이다. 반면 지난 1만년의 아주 예외적으로 안정적인 기후 아래서 번창하고 있는 인간 문명을 '화창한 잔디밭에서 벌이는 피크닉'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지난 6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다국적 연구팀의 '인류세(世) 기후 시스템의 변화 궤적'이란 논문이 폭염 사태와 맞물려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논문 요지는 지구 기후가 균형 회복력을 잃어버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후 시스템은 한 영역에서 발생한 교란 요소가 도미노 무너지듯 여러 형태의 연쇄 반응을 촉발하면서 걷잡을 수 없게 증폭돼 갈 수 있다.

 

일단 그 임계점을 넘어서면 변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덜커덕하고 한꺼번에 굴러떨어진다. 그러고 나선 인간이 어떻게 대응하더라도 더는 이전 균형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복원 불능 상태의 지구 기후를 '찜통(hothouse)'에 갇힌 것으로 표현했다. 연구팀은 불가역적 연쇄 반응을 촉발시킬 수 있는 기후 요소로 북극 바다 얼음, 그린란드 빙하, 시베리아 영구동토, 산호초, 아마존 밀림 등의 15가지를 들었다.

 

한 기후학자가 이런 비유를 했다. 기다란 의자가 놓여 있다. 거기에 현재 다섯 명이 앉아 있다고 치자. 의자는 구조적으로 볼 때 20명 이상의 무게를 버텨낼 수 없다. 20명까지 가기 전 어느 시점에서 부서질 것이다. 아직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 사람들은 '몇 명 더 앉아도 의자는 버틸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 말대로 의자는 19명까지 버티다가 20명이 돼서야 부서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태 끄떡없던 의자가 여섯 명째, 또는 일곱 명째에 부서질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부서지기 전까지는 겉보기가 멀쩡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자가 위험해졌다는 걸 실감할 수 없다. 우리의 의자엔 몇 명이 더 앉을 여유가 남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