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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면 안 되는 것 두 가지, 기자 정신과 글쓰기"

앤 셜 리 2020. 4. 7. 08:07
1965년 입사, 55년 신문기자 외길… 재직기간 겪은 대통령만 10명
"아부도 돈 밝히지도 않아 좋았다… 기자는 완성도 높은 글을 써야"

"아직도 200자 원고지에, 그것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글을 쓰는 낡은 기자는 이제 물러갑니다. 기자로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아부 안 하고 돈 안 밝히고 살아서 좋았습니다. 55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자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살아온 김대중(金大中·81) 조선일보 고문이 54년 10개월간 근무했던 조선일보에서 31일 퇴임했다.

김 고문은 1965년 6월 조선일보 수습 8기로 입사해 외신부·사회부·정치부 기자, 주미(駐美) 특파원과 외신부장·사회부장·정치부장을 거쳐 출판국장·편집국장·주필·편집인 등을 역임했다. 55년 세월 기자와 칼럼니스트로서 언론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김 고문이 '신문기자 55년'을 보내는 동안 박정희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열 명의 대통령을 겪었고, 1인당 GDP 108달러의 세계 최빈국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 됐다.

이날 오후 6시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열린 퇴임식에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준호 발행인, 양상훈 주필을 비롯해 조선일보 임직원과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참석했다.

김 고문은 이날 고별사에서 후배들에게 '기자 정신'과 '글쓰기'를 강조했다. 그는 "통신지(통신사 기사를 인쇄한 종이)의 이면을 원고지로 쓰고 납 활자를 한 자씩 뽑아 조판하던 시대에 조선일보에 들어왔지만, 지금의 신문 환경은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 달라졌다"면서 "이 엄청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기자 정신'과 '글쓰기'의 중요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용기 있는 비판 의식을 뜻하는 기자 정신이 아무리 투철해도 글쓰기가 뒤따라주지 못하면 좋은 보도가 나올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면서 "기자 개개인의 글쓰기와 완성도가 중요하며, 기자가 완성도 높은 글을 신문에 파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고문 스스로가 기자로서 지켜온 원칙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 고문은 주간지 '시사저널'이 매년 발표하는 언론인 영향력 조사에서 1994년부터 2004년까지(1995년 제외) 1위를 지켰고, 그 이후로 작년까지도 5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양상훈 주필은 송별사에서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일가를 이룬 사람을 전설이라고 부른다. 한국 언론계에 전설이 있다면 김대중 고문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서 "함께했던 그 긴 세월 저희 후배들한테는 큰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양 주필은 처음 신문사에 입사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김 고문의 글을 읽으며 기자는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을 배웠다"고도 했다.

이날 퇴임식에서 방상훈 사장이 김 고문에게 전달한 공로패 '55년 기자 김대중을 기억하며'에는 1984년 11월 30일 자 조선일보 5면에 실린 동서남북 칼럼 '거리의 편집자들'을 동판으로 제작해 담았다. '1단 기사와 빨간 줄의 의미'라는 부제가 붙은 이 칼럼은 5공화국 때 언론의 자유가 없던 시절을 비판한 내용으로 김 고문 스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칼럼'으로 꼽은 글이다.
공로패에는 '조선일보 후배 일동' 명의로 "한국 언론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우리는 김대중 고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김 고문은 모두가 알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했고,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직필(直筆)이 시대와 나라를 움직였습니다. 지난 55년 동안 김 고문은 한결같이 조선일보 기자였습니다. 한 시대의 전설과 함께 했음을 영광으로 여기며…"라고 새겼다.
김 고문은 앞으로도 언론인으로서 삶을 계속 이어간다. 1987년부터 33년 동안 격주로 빼놓지 않고 집필해 온 '김대중 칼럼'을 퇴임 후에도 계속 쓸 예정이다.

기고자 : 신동흔 기자 김영준 기자


[조용헌 살롱] (1239) 55년 신문 글쓰기
언론이라도 신문과 방송은 기질이 다르다. 방송은 말과 화면발이 좋아야 한다. 신문은 글과 문장력 비중이 높다. 말과 화면발은 최근에 생긴 영향력이지만, 글과 문장력의 파워는 한자 문화권의 유교 국가에서 수천 년 전통을 가지고 있다. 조선조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시험의 합격 여부도 결국 글과 문장이었다. 글쓰기가 되려면 논리와 암기력, 창의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엘리트는 칼과 창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문사(文士)였다. 이 문사적 전통을 계승한 현대의 직업이 신문사 논객 아닌가 싶다.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소설가와 신문에 칼럼을 쓰는 논객이 다르다. 소설가는 엿장수요, 칼럼니스트는 참기름 장수에 해당한다. 엿장수는 엿가락을 늘이는 데에서 묘미가 느껴진다. '어떻게 저렇게 늘일 수 있을까' 하고 그 상상력에 감탄한다. 반대로 칼럼은 꽁지, 대가리 다 떼어버리고 요지만 압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재래시장의 참기름 집에 가서 참깨를 집어넣고 나사를 돌려 압착하는 기계를 볼 때마다 나는 압착의 미학을 감상한다. 압착도 군더더기를 다 떼어버리고 핵심만 추려내는 지성의 힘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참기름 장수가 엿장수와 조우하면 스파크가 튄다. 이야기하다 보면 참기름 장수는 자꾸만 엿장수의 말을 자른다. '결론만 이야기해.' 반대로 엿장수는 '당신은 왜 자꾸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서 자르는 거야' 하고 성질을 낸다.

김대중 고문이 엊그제 조선일보사를 그만뒀다. 1965년에 입사했다고 하니까 장장 55년 동안 기사와 칼럼을 쓴 셈이다. 55년이라니! 한국 신문계가 배출한 대표적 참기름 장수가 아닌가 싶다. 정치권과 청와대의 여러 제안과 자리도 거절했고, 돈 문제로 인한 큰 스캔들도 없었으므로 가능한 55년이었다. 나 같으면 돈과 벼슬에 굴복했을 것 같다. 금전과 벼슬에 걸리지 않고 55년 동안 주야장천 신문 글쓰기만 하는 것도 팔자가 아닐까? 후천적 노력도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이게 노력한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팔자를 뽑아보니까 계(癸) 일주에 묘(卯)가 셋이나 있다. 하나만 있어도 좋은데 셋은 트리플이다. 수재 사주인 것이다. 여기에서 묘(卯)는 문창성(文昌星)이다. 문장과 학문을 상징하는 별이다. 더군다나 이 문창성이 모두 식신(食神)에 해당한다. 문장으로 사회에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만 벼슬운은 약한 팔자다. 이게 다 팔자이고 주님의 섭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