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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포기한 獨은행가 장남의 한마디 "평생 원하는 책 사다오"

앤 셜 리 2020. 5. 1. 05:18

부자가 3대 가기 어렵다'는 옛말이 있다. 유럽의 많은 기업이 몇 백 년을 이어왔다지만, 주인도 계속 이어진 경우는 많지 않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는 백 년 기업이지만 위기마다 오너를 바꾸었다. 그것이 도리어 기업의 장수를 가능하게 하였는데 그런 사례는 꽤 많다.

부자가 3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은 손자 세대에 이르면 능력이 떨어져서 할아버지만큼 해내지 못한다는 말일까?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철강왕'으로 불린 제철업 재벌이었다. 그러나 자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가업 계승을 거부하고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가 된 비트겐슈타인은 항상 무릎이 튀어나온 바지에 단벌 코르덴 재킷만 입고 다녀서 사람들은 그가 대부호의 아들인 줄을 몰랐다. 또한 그의 동생 파울은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도 방직업 부호 집안이지만, 그는 가업을 포기하고 문필가의 길을 택했다.

유럽 신흥 부호 3대들, 예술·학문의 길로

1900년을 전후하여 유럽에서 산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수많은 기업가가 탄생하였다. 상공업을 기반으로 한 그들은 기존의 귀족들을 능가하는 재산을 모으고 가문을 키웠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가업을 계승했다. 흥미로운 것은 2대나 3대에 이르자 많은 자손이 가업 계승을 포기하고, 예술가나 학자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를 보면 부자가 3대를 가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3대 정도에 이르면 자손들의 시야가 넓어지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기말 유럽의 신흥 부호 중 다수가 유대인이었는데, 그들은 기득권이 되기 위해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남작 작위를 사고, 귀족 이상으로 돈을 남용했다. 그들은 기업을 위해 유대인의 정체성도 저버리고 배금주의로 돌아섰다. 졸부의 천민자본주의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모습에 손자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돈에 연연하던 세대를 넘어서 손자들은 다른 가치를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예술과 학문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향해서, 우연히 주어진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나갔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웃는 남자'에서 이른바 '금수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가진 특권의 아버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연입니다. 특권의 자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악용입니다."

독일 최대의 무역항인 함부르크는 상공업이 대단히 융성하였으며 또한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함부르크의 구도심에 가면 대형 석조 건물들이 어깨를 맞댄 채로 거리를 채우고 있는데 지금은 주로 쇼핑몰이나 호텔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런 건물들에는 대부분 과거 국제무역에 관여하던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들어서 있었다. 이런 함부르크에 1798년 바르부르크 은행이 설립되었다. 은행은 곧 독일 전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게 되었다. 제2대 주인은 아들을 다섯이나 두었는데 장남이 아비 바르부르크(1866~1929)다. 아비가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대인 집안에서 장자의 특권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제 전부를 상속하게 된 아비는 한 살 아래 동생인 12세 막스를 찾아갔다. 아비는 막스에게 "모든 은행과 재산과 장자상속권까지 너에게 넘길 테니, 그 조건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 달라"고 말했다. 그의 조건은 "앞으로 평생 내가 원하는 책은 다 사달라"는 것 하나였다.

그렇게 그는 기업을 책과 바꾸었으니 금수저만이 해볼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 후로 펼쳐진 상황이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태어난 사람이 빼어난 지성을 함께 갖춘다면, 어떤 큰일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아비는 세상의 책이란 책은 다 읽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였다. 그는 물려받은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유럽의 저명한 교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숙하였고, 굳이 대학에 교수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아비는 문화사학자이자 미술사학자가 되며 도상학(圖像學) 연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된다.

아비, 모든 재산 포기… 지적 가치 추구

아비는 평생에 걸쳐 세계의 온갖 문헌과 자료를 수집하였다. 장서가 늘어나자 막스에게 10만프랑을 받아서 건물을 지으니, 1925년에 세워진 바르부르크 문화학 도서관이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모아 생활비까지 대어주면서 함께 연구를 이어갔다. 대학 못지않은 연구소에서 언스트 곰브리치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함부르크의 알스터 호숫가에 있는 바르부르크 도서관은 얼핏 저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들어가면 학문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1층에는 커다란 타원형 방이 있어서, 지금도 강연회가 열린다. 장서는 2층에서 5층까지 보관되어 있는데, 건물은 아비가 지향한 독특한 연구 방식을 구조를 통해 표현한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서적용 승강기가 설치된 도서관이었다. 나중에 아비는 정신병적 조울증으로 힘든 만년을 보내고, 백 년이 된 도서관도 점점 잊혀갔다. 그러나 현관에 붙은 기억이라는 의미를 가진 '므네모시네(Mnemosyne)'라는 단어는 평생 지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행동하고 나누려 했던 한 남자를 잊을 수 없게 한다.

돈은 있지만 지성이 없을 때, 특히 부족한 지성으로 어설픈 흉내만 낼 때, 드러나는 것은 천박함이다. 반면 지성은 있으나 돈이 없을 때, 자칫 드러날 수 있는 것은 구차함이다. 많은 돈과 빼어난 지성이 옳게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기고자 : 박종호 풍월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