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나의 이야기

나만 백수다

앤 셜 리 2022. 5. 29. 08:17

강원도 고성 (이승만대통령 별장 옆에서 보이는 화진포 호수)

단톡에서만 만나 안부 전하고 손가락 수다를 떨던 친구 4명이 이젠 밖에서도 만나보자며
용기를 냈다 3.8일 하루 신규확진자 30만명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요즘
3차 예방 접종을 끝낸 우리니 더 이상 쫄지 말자며 

11시 30분에 사당역 13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나간김에 시청역 서울 도서관에 반납할 책 때문에 여유 있게
2시간 전, 9.30분에 집을 나섰다.

 

건봉사 절 안에 피어있던 작약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1호선 시청역에서 2호선 사당역 가는 길은
서울역에서 환승! 4호선 오이도행을 타면 된다.(나중에 참고하려고 기록)
4 친구를 만나 방배동 코다리 찜 점심을 먹은 후 임종회 씨가 보리빵 2개씩을 사서 나눠줬다.
(식당에서 보리빵 죽염 마른 나물 젓갈등을 판다)
자기네 동네 왔는데 밥값을 더치페이했다고 강제로 안겼다
식사 후 가까운 야산에 갈 예정이었는데 밥을 먹고 나니 모두가 다리도 무겁고 꽃샘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듯 춥기도 해서 따듯한 차 마시자며 스타벅스로 갔다

 

화진포 해수욕장

문제는 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도 깨진다는데 한쪽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싶은데
그런 자리는 이미 주인이 있거나 아니면 곧 앉을자리라고 가방이나 소지품을 올려놓은 상태다
예쁘지도 않은 사람들이 매장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니 카페
입장에선 모양새가 거시기할 거 같다. 서로 말들이 섞이다 보니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방해도 될 듯싶었다. 요즘 찻집은 준 독서실로 보면 된다.
소곤소곤 말해야 될 자리인데 말이 부딪치다 보니 옆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왕곡마을 일부

주제를 바꿔 느닷없는 인터뷰(질문)를 했다. 이젠 우리는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를 살면서도 나름 인생 현역이잖아~시간을 다르게 써야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요즘 어떤 일을 할 때 살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는지?" 한 마디씩 해볼 테야?

 

임종회 씨, 나의 작은 행위가 타인에게 도움 되었을 때 살아있는 보람을 느낀다고.. 교회봉사를 할 때란다.
이 친구는 집에다 병원용 침대 들여놓고 7년째 파킨슨 씨와 치매인 남편을
돌보는 남편의 아내이자 엄마다. 남편 치송에 볼 때마다 야위어가는 친구
모습에 이제 그만 요양원에 모시는 건 생각 안 해봤냐고 물으니
펄쩍 뛴다 내가 이렇게 멀쩡한데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우리들 만남에도 늘 먼저 일어나야만 한다 삼시세끼 남편 밥시간 때문이다
뇌신경의 고장은 온몸의 고장이다 정신도 몸도 무너진 아내도 몰라보는
남편 병 수발이 인생 특급 미션인 양 수행하는 친구에게 생색내는 듯 한
보람이라는 질문은 언감생심(어찌 감히)인듯하다

 

이건덕, 이제까지 이혼 않고 살아온 것이 오늘을 사는 보람이라고..
이 친구는 나보다 4살 밑으로 젊은 시절 시댁식구 9남매의 맏이 아닌 맏이로(맏동서가 일찍 사망) 살면서      
남편의 여자 편력까지 마음 고생한 친구다.
나는 전화로 하소연을 어지간이 들어줬다 (남편은 워낙 친절한 성격이라 남을
배려한다는 게 오해의 소지로 여자들이 따르는 형이다)
지금은 늦깎이 대학 공부에 열심인 친구. 코로나로
교수들과 제대로 대면도 못하고 교우들과 교정에서 끈끈한 정도 못 쌓고 온라인으로
컴퓨터 앞에서 애쓰는 친구다. 리포터 쓴다고 가끔 불러 늙은 머리를
쥐어짜고 자장면 얻어먹고 올 때도 있다. 책 속에서 대안을 찾았을까
상처투성이로 구겨졌던 마음이 꽃처럼 활짝 폈다

 

윤정자,
제자 결혼 주례 서줬을 때나 훌륭하게 성공해 가는 제자들 모습을 볼 때란다.
온 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반짝이듯 이 친구 두 눈에도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하다 지금도 한자학원을 운영하며 베트남 다 문화 가정의 어린이에게 "너 꿈이 뭐야?
대답 없는 아이에게 대통령 된다 해도 돼 이건 꿈이니까. 선생님이 널 반드시 훌륭한 사람 만들어 줄 거야" 라며
미래세대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분이다. 곳곳에 보람이 넘친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대화가 엉키지 않고 진지하게 서로 경청하다 보니 얘기들이 길어졌다.
이젠 내 차례다 임종회샘이 남편 식사때문에 일어날 시간 함께 일어났다
파리바케트에서 호두파운드케이크를 사서 남편 갖다 드리라고 차에 얼른 넣어줬다
내 이야기는 다음으로..

나는 요즘 뭐를 해도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줄 일이 없다. 허전하기가 허허벌판이다
보람이 있다면 책 속에서 만나는 지성들이다 세월을 이겨낸 천 년 전 이천 년 전 지성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삶의 지혜를 만났을 때보람을 느낀다. 한 줄의 문구에서, 토막말에서
삶의 지침을 깨닫고는 미욱한 인간으로 살 뻔했구나 반성도 한다

 

(시청앞 북 페스티벌)

책에서 글에서 배운 것들은 반딧불 지혜
수행에서 얻은 지혜는 태양 같은 지혜라고
했지만 반딧불이라도 채워야만 되는 나

대안대사와 원효대사의 일화,
배가 고파 죽어 가는 너구리들에게 원효대사는 슬픈 목소리로
관념적인 염불을 외고 있었다.
원효스님, 내가 너구리 새끼가 알아듣는 염불을 하겠습니다. 스님도 함께 듣으십시오
대안대사는 동네에 내려가 얻어온 젖을 새끼들에게 먹이며
이것이 바로 너구리들이 알아듣는 염불입니다.
('흙과 바람으로 가는 불 빛' 중에서)

 

능파대 해넘이

과부와 결혼하는 것을 부모가 반대 하자 자살한 젊은이에게
"과부와 결혼해봤자 평생 불행 오히려 구원받았다는 노인의 말
인생살이는 힘든 것이오 팔자가 늘어져 봐도 별 수 없어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데모스 카잔카스키의 묘비명)

19세기에서 태어나 20세기를 살다 간 두거인 카잔카스키와 조르바는 21세기를 맞은
나에게 여전히 현실이다

그러고 보니 나만 백수다.

(지난 3월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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