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책.

피안의 窓.

앤 셜 리 2009. 3. 13. 14:44

부처님의 지혜. 반야바라밀!

"부처님이 성불하신지 오래지 않은 어느때에 우루벨라마을 네란자라강 가의보리수 그늘에 계시면서 혼자 고요히 이렇게 생각하셨다.

" 공경할 사람이 없는이는 괴롭게된다.

삶이 신중하지 못하고 남의 뜻을 두려워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타락한다. 공경할 대상이 있어 그를 따르면 삶이 신중하고 진리에 만족을 얻는다.

 

천신과 세상사람중에서 계율과 삼매와 해탈과 해탈지견 등이 나보다 나은 이가 있으면 나는 그를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면서 그를 의지해 살아가리라.

 

부처님은 다시 이렇게 생각 하셨다

천신과 세상사람중에서 계율과 삼매와 해탈과 해탈지견 등이

나보다 나은이는 없다.

오직 정법  (正法) 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스스로 깨달아 성불하게 하였다.

나는 정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정법을 의지해 살아가리라

왜냐하면 과거의 여래도 정법을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며 살았고

미래의 여래도 정법을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에 천신들은 게송으로 부처님을 칭송했다.

과거의 부처님과 미래의 부처님과 현재의 부처님은 중생들의 근심을 없애주십니다. 부처님들은 정법을 공경하고 정법을 의지해서

사셨습니다. 이렇게 정법을 공경하는 삶.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법입니다.

 

이것은 {잡아함경} 권44{존준경}에 수록된 경문이다.

부처님은 어떤것에도 의지하지않고 오직 정법에 의지하고 정법을

존중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면 정법은 무엇인가?

 

정법은 다름이 아니라 연기법(緣起法) 이다.

모든 경전에서 연기법을 정법으로 기록했다. 연기법은 부처님이 스스로 깨달은 법이다.

 

깨달음을{불본행집경} 권 30에서는 "법으로 부터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의견이 생기고 지혜의 작용이 생기고 밝음이 생기

는 것이라 했다. {從法 生眼生智 生意生慧生明} 이렇게 볼때 연기법

                       종법 생안생지 생의생혜생명

은 누구로 부터 배운것이 아니며 누구로 부터 물려받은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이해된 법이다.

 

그러면 연기법은 어떤 법일까?

 

연기법은 무아법이며 불생불멸법이다 부처님은 불생불멸의 무아법을 깨달아서 생사의 고뇌에서 해탈하였다.

무아법을 알고 무아법을 보는것이 "해탈지견"이다.

해탈지견은 바로 불지견{佛知見}이다.

불지견을 반야바라밀 이라 한다  금강경 육조해{ 金剛經六祖解}

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부처님은 깨달음이고 부처님은 관조{觀照}이다.

관조는 지혜이니 지혜는 반아바라밀이다.

{ 佛卽是覺 覺卽是觀照 觀照卽是智慧 智慧卽 是般若波 羅蜜多)"

  [불즉시각 각즉시관조 관조즉시 지혜지혜즉 시조야파 라밀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인격체이다.

깨달음은 청정심의 관조 능력이 있다 깨달은 청정심에 의한 관조의

지혜가 반야바라밀이다.

 

한국 불교에서는 "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쉽게 접할수 있다.

이 두경전을 비롯하여 반야부<般若部>계통의 반야 바라밀의 실천법을 가르친다. " 이렇게 청정심을 내야한다.

보이는것<色>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며 소리,냄새 맛,

감촉과 그리고 기억되는 것과 생각 되는것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내야한다.應如是生淸靜心 不應住色生心

                                        [응여시생 청정심 불응주색생심]  

不應住聲 )香味觸 法生心 應無所住  而 生其心 )" 금강경의 이 구절

[불응주성 햫미   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은 불자들이 중요하게 독송한다.응

중국의 해릉조사(慧能祖師 : 638-713) 가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내란 ㄴ응모소주 이생기심  의 경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것은 반야바라밀법이 동 아시아 의 조사선지[祖師禪旨]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집착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애증심이다.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내는것은 소리,냄새 맛,감촉 기억 밑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것을 뜻한다.

집착이 없으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인간의 삶 전체가 얽매임이 없이 자재[自在)하는 해탈이 된다.

집착하면 생사의 속박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의 자재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은 생사의 속박에서 그대로 해탈의 자재를 이루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 집착으로 부터 탐욕이 생기고

분노가 일어나며 두려움에 빠진다.

집착이 없으면 탐욕과 공포등의 고뇌는 있을수 없다.

보고 듣는것이 문제가 아니라 보고 듣는데 집착하는것이 문제이며

태어나고 죽는것이 문제가 아니라 태어나고 죽는데 집착하는것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집착은 도대채 왜 생기는 것일까?"

 

집착은 자아[自我] 로 부터 생긴다. 중생은 자아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집착을 한다.

부처님은 자아가 연기법이며 무아법이며 불생불멸법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집착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무아를 깨달은 지혜로 일상생활에서 해탈 자재를 여실히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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