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의 좌우 합작 민족단일전선 신간회(新幹會)의
초대 회장은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였다.
정인보(鄭寅普)는 ‘월남 이선생 상재 신도비명’에서
‘평생을 통해 가난이 심해서 어떤 때는 하루 한 끼의
밥도 먹지 못했지만 뜻이 오히려 태연하셨다’고 썼으며,
박승봉(朴勝鳳)의 ‘월남 이상재 선생 행장’에는
‘민족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죽고 사는 일에 관계가 없이 싫어하거나 괴로워하여
회피하는 태도가 없었다’라면서 ‘중년 이후로
더욱 곤액(困?)해서 서울에 있은 지 수십년 동안에
집 두어 칸을 얻지 못하고 동서로 옮겨 다니면서
늙을 때까지 일정한 곳이 없었으나 그래도 태연했다’고 쓰고 있다.
암울한 현실을 해학으로 풍자하는 것이 이상재의 장기였다.
일본의 정객 오사키(尾崎行雄)가 가회동 우거(寓居)를 찾아오자
‘응접실로 가자’며 낡은 돗자리를 들고 소나무 숲 속으로 데려갔다.
오사키가 “일본과 조선은 부부 사이인데,
남편이 조금 잘못했다고 아내가 들고 일어나서야 되겠소?”라며
3·1운동을 비판하자
“정당한 부부가 아니고 폭력으로 이루어진 부부라면 어떻게 하겠소?”라고 답했다.
일본 시찰단 시절 도쿄의 병기공장을 보고 “성경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으니 이것이 걱정이오”라고 했다는
일화나 조선 주둔군 사령관 우쓰노미야(宇都宮)가
감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청량한 웃음거리였다.
민립대학 설립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하와이
교포들이 초청하자 “뜻은 고마우나 나는 일본 여권으로는
하와이는커녕 천당에서 오래도 가지 않겠소”라고
거절할 정도로 원칙은 뚜렷했다.
청년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그에게 ‘청년들 버릇이
나빠진다’고 걱정하자
“내가 청년이 되어야지 청년들보고 노인이 되라고 하겠나”
라고 받기도 했다.
어제(29일)가 월남 서거 80주기인데, 그때 전 민족이 합심해
사회장을 치렀다.
원칙과 말을 수시로 바꾸면서도 독설을 내뿜는 정객들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수난의 민족에게 희망과
웃음을 선사했던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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