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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2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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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선듯했습니다. 발 밑에 있는 담요를 끌어당기며 “더위가 어디 갔어?”라고 물었지요. 더위는 말이 없었습니다. 폭염(暴炎)이 영원히 기세를 떨칠 줄 알았는데, 바뀌는 계절 앞에서는 별 거 아니었군요. 내 마른 몸에서 땀을 뽑아가던 폭염은 과연 자신의 앞날이 이렇게 무력해질 줄 알았을까요.
더위의 완결편을 이루지 못한 미련에 못내 섭섭하겠지요. 아니 한차례 더 몸부림치며 거센 열기를 뿜어냈다고 해서, 세월 속에서 이렇게 축 늘어지는 결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폭염만 그런가요. 잘났다는 인간들도 자신의 삶에서 모두 이루지 못한 채 떠납니다. 세월의 힘으로 성취를 하면서도, 세월의 힘 앞에서 모든 걸 놓아버립니다. 그날 그날 자신을 괴롭혔던 온갖 욕망을 남겨두고서,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스스로 떠나지 않으면 떠밀리게 됩니다. 떠나고 나서 살펴보면, 처음과 같고 남들과 같은 ‘맨몸’입니다.
화려해 보이는 권력자들도, 재벌들도, 지금 시끄러운 대통령도 결국 이런 이치에 굴복합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유독 자신만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센 힘이 여전히 세게 남아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요. 현세의 시한부 권력이 자연의 영원한 이치를 이겨내려는 것과 같지요. 아무도 못 당할 것 같은 이 뜨거운 여름조차도 세월 앞에서는 물러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지하철로 출근하는데, 곁에서 머리가 반쯤 센 직장인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지요. 영어 회화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첨단 유행의 이어폰을 꽂은 행색은 젊은이인데, 먹고 사는 삶의 피곤함은 틀림없이 제 또래의 중년이었지요. 그 나이에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다른 직장으로 옮기거나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서인지, 그건 알 수 없고 묻지 못했지만 절로 감흥이 일었고, 시 한 수가 떠올랐습니다.
〈팔월에 가을 바람 거세게 불어와/ 내 집의 몇 겹 띠 지붕 말아가네/ 띠풀은 강 건너 날아가 흩어지고/ 높은 나무 숲 가지에 얽혀 걸리거나/ 낮게 굴러 웅덩이에 빠진다/ 남쪽 마을 아이들은 늙고 힘없는 나를 얕잡아보네/ 내 면전에서 이를 도적질하고/ 공공연히 띠 풀을 안고 대숲으로 들어가네/ 타는 입술 목마르게 외쳐도 소용없고/ 돌아와 지팡이 짚고 스스로 한탄한다/ 이내 바람 멎고 구름은 먹빛인데/ 가을 하늘은 아득히 어둠에 잠기네…〉
당나라 두보(杜甫: 712~770)의 ‘가을바람에 띠 지붕 날려서 노래하다(茅屋爲秋風所破歌)’라는 시지요. 두보의 시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입니다. 시 속의 장면이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나요. 특히 제게는 다음 구절이 마음에 닿았지요. “남쪽 마을 아이들은 늙고 힘없는 나를 얕잡아보네(南村群童欺我老無力)/ 타는 입술 목마르게 외쳐도 소용없고(脣焦口燥呼不得)/ 돌아와 지팡이 짚고 스스로 한탄한다(歸來倚杖自嘆息)”.
세상 살면, 타는 입술 목 마르게 외쳐도 소용없는 경우가 많지요. 연보를 찾아보니, 두보가 이 시를 쓴 때는 마흔아홉. 제 나이보다 딱 한 살 많을 때였지요. 그런데 시 속의 두보는 지팡이 짚고 있는 노인입니다. 우리는 중년일 뿐, 아직 이렇게까지 늙었지는 않지요. 좋은 시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중년 직장인들이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출근한들, 저 두보 시절보다는 낫겠지요.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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