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신(神), 또는 문장의 신과 통한 것을 우리 선조들은 '서신통(書神通)'이라고 불렀다. 내가 이 말을 처음 듣게 된 계기는 80년대 초반 소설 '단(丹)'의 모델이었던 봉우 권태훈 선생으로부터였다. 봉우 선생은 추사 김정희를 가리켜 서신통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박학과 문장, 그리고 추사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특출한 재능은 본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정신세계의 어떤 신(神)과 접하거나 통하였을 때 나온다고 보는 관점이었다.
엊그제 '개미'를 쓴 프랑스 소설가 베르베르(49)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그가 이제까지 써놓은 단편소설이 500편이나 된다고 한다. 베스트셀러인 '개미'도 18세부터 쓰기 시작하였다니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베르베르의 이러한 내공은 밤에 자면서 꾼 '꿈'에서 나왔다는 해명을 듣고 보니 더욱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보통사람은 자고 나면 상당부분 꿈을 잊어버리기 쉬운데 이 사람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 5분씩 꿈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만큼 기억이 선명하게 난다는 이야기 아닌가! 결국 소설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 그 기본 뼈대는 꿈에서 얻은 내용으로 충당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베르베르는 서신통을 한 사람이다.
서신통을 한 사람들의 윗대 족보를 올라가 보면 그 조상 가운데 공부를 많이 한 학자가 있거나, 이런 분야에 평생 골몰했던 사람이 있었던 사례가 많다. 그런 조상들이 꿈을 통하여 후손에게 알려준다. 의식 밑에 잠복해 있는 무의식(無意識)은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이 통신을 주고받는 광케이블인 셈이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앞두거나 또는 절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영험한 예지몽을 꾸는 수가 있는데, 이것도 역시 무의식을 통한 조상과의 교감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서신통을 달리 해석한다면 격세유전(隔世遺傳)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장이나 이야기 업에 종사했던 조상의 유전자가 몇 대(代) 건너뛰어 후손에게 유전된 것이다. 사례연구 삼아 베르베르의 가계도를 한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어찌되었던 간에 그는 소설신(小說神)과 접신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접신이 안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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