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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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수좌를 생각하며

앤 셜 리 2010. 9. 6. 20:07

불교계 환경운동을 이끌어온 수경 스님이 지난 14일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며 서울 화계사 주지와 불교환경연대 대표, 조계종 승적 등을 모두 내놓고 종적을 감췄습니다. 수경 스님은 1967년 수덕사에서 출가했습니다. 수덕사의 가장 높은 어른인 방장(方丈) 설정 스님이 수경 스님에 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덕숭산 정혜사(수덕사 선원·禪院)에 밤새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쳤다. 화택(火宅·불난 집) 세상에 사는 중생들의 번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무겁고 침중하다. 좌복(참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에 앉으니 영혼을 파고드는 송곳이 심장을 찌른다.

나의 심장을 찌르는 그 송곳은 바로 '수경 수좌(首座·참선하는 승려)'다. 절뚝거리며 문을 벌컥 열고 그 특유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스님 저 왔습니다"라고 할 것만 같다. 그는 삼보일배로 부서진 다리 때문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것을 늘 송구스럽게 생각했다.

"스님, 빨리 생명운동 끝내고 스님들과 함께 용맹정진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수경 수좌는 다른 수좌들처럼 생사를 걸고 용맹정진하지 못하는 것을 송구스러워했다. 수경 수좌의 얼굴과 눈에서 나는 정말로 수좌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었던 그의 간절한 염원을 느꼈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내놓고 있던 수경 수좌의 얼굴은 맑았다.

뜨거운 여름 화학 덩이로 뭉쳐진 아스팔트에 엎드려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수경 수좌의 뒷모습에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사(生死)'를 절단하려는 의기(義氣)가 있었다. 수좌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저 수좌에게 너무도 짐을 맡겨 놓고 '우리 불교가, 우리 스님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위안하며 방관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도, 종단도, 우리 스님네들도 선방과 포교당에 시원한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놓고 '뭇 생명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을 함께 들고 있다고 그 수좌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강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혜사 선원에 산바람이 분다. 수경 수좌의 지친 육신과 땀에 절인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하다. 인기척인가 싶어 혹여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면 수좌는 없고 허공에 바람만 그림자를 남기고 떠다닌다. 또다시 먹먹한 아픔이 몰려온다.

수경 수좌는 나에게, 종단에, 우리 사회에, '반역(反逆)'과 '경종'을 울리는 역경보살이었다. '생명을 죽이는 사회', '개발과 발전이 유일한 수단인 사회' 그리고 '생명과 생명이 돈으로 거래되는 시대'를 육신과 영혼으로 담아낸 역경보살이었다.

수좌는 '세상'이라는 선방에서 '생명'이라는 화두를 들고 10년 동안 홀로 용맹정진을 했다.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출구 없는 우리 시대에 '인간'에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위해 우리가 '우리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하루하루의 고통스러운 정진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지금, 여태까지 지고 있던 무거운 짐보다 수천, 수만배 더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길을 떠났다.

나는 기도한다. 수경 수좌의 바람처럼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믿는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나는 수좌가 선방으로 돌아가든, 운동가로 돌아가든, 지금까지 내게 보여주었던 강철 같은 모습처럼 분연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기원한다. 이제는 모든 것을 놓고 허공을 떠도는 바람처럼 육신을 세상 어느 곳에나 부려놓고 조용히 쉴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설정(雪靖)·수덕사 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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