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으레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병원에 들어간 날부터 빨리 질병에서 벗어나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환자들은 그걸 당연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병원도 나름대로 감동과 재미, 위안을 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에는 숄다이스(shouldice)라는 탈장 전문 병원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원이다. 병상 수가 100개밖에 되지 않지만 12명의 전문의사가 연간 7500여건의 수술을 한다. 병원 광고도 하지 않는다. 환자 대다수는 여기서 치료받고 나간 환자들이 소개하여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연구 사례로 꼽히는 이 병원의 성공 비결은 탈장 수술 과정을 전문화하고 분업화하여 치료비를 낮춘 데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꼽히는 것은 '재미'다.
병원에는 환자들의 무료함을 잠시 달래는 TV가 없다. 대신 레크리에이션 공간이 있다. 환자들은 여기서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과 '논다'. '선배 환자'는 '후배 환자'에게 질병 관리의 노하우를 자연스레 전수한다. 병원은 나이와 직업이 비슷한 환자들을 같은 병실에 배치한다. 그들은 동병상련으로 금세 친해진다. 형제·자매가 된다. 식사도 공동 레스토랑에 모여서 같이 한다. 식당에는 스스로 걸어가야 한다. 수술 후 걷기는 회복에도 좋다. 병실에는 욕실도 없다. 목욕탕도 환자들이 어울려 함께 쓴다. 아쉽게도 골절 환자는 병원이 사양한다. 움직일 수 없는 환자는 받지 않는다. 수술실에도 환자 스스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환자는 대환영이다. 모든 것을 환자가 직접 하도록 하여 병원을 일상생활 공간처럼 만든 것이다. 환자들은 병원에 머물렀던 추억을 잊지 못해 매년 모임을 갖는다. 퇴원 환자들은 모두 '숄다이스 동창생'이 된다. 물론 병세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탈장 환자들이기에 그런 '입원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유방암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미국의 유명 암센터에는 다른 의미의 '입원 위안'이 있다. 환자가 입원하면 수년 전 유방암을 앓았던 환자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다. '과거 환자'들은 '현재 환자'에게 말한다. 바로 몇 년 전 나도 지금의 당신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수술 잘 끝나고 항암치료 꾸준히 받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다. 비록 암 환자이지만 암을 이겨낸 지금이 예전보다 더 행복하다.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어떤 의사의 위로보다 환자에게 더 위안이 되는 말이다. 그들은 치료가 끝나면 가족처럼 지낸다. 새로운 환자들을 언니·동생처럼 받아들이며 병원에서 맺은 인연을 이어간다.
우리나라 병원들도 많은 노력을 하지만 의료 기술적인 면에 집중돼 있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병원은 질병 치료 전문 기업이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이 점철된 곳이기 때문이다.
기고자:김철중 본문자수: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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