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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달변이 썩 달가운 건 아니었다. 동료들 사이 별명이 '아줌마'라더니 틈날 때마다 철없는 아이 나무라듯 잔소리를 쏟아냈다. "일본 하면 스시이~, 초밥이 젤 먼저 떠오르시죠잉? 근디 초밥 드실 때 간장에 밥을 찍어 먹는 분 계십니다. 간장엔 회를 찍으셔야죠잉. 글고 초밥은 반드시 따뜻한 녹차 물과 드셔야 탈이 안 납니다. 또 일본선 우동 먹을 때 국물까지 훌렁훌렁 안 마십니다. 건더기 건져 먹고 국물 한 모금 마신 뒤 젓가락 내려놓는 겁니다아~. 일본에선 젓가락을 가로로 놓는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세로로 놓으면 뾰족한 끝이 앞사람을 위협하기 때문이지요. 나무젓가락도 좌우 아니고 위아래로 뜯는 게 매너입니다잉." 온천에 내려주면서도 잔소리가 한 바가지였다. "온천에서 침 뱉고 코 푸시면 안 됩니다아~. 서서 샤워하는 것도 실례여요. 일본 사람들은 옆 사람헌티 물이 안 튀도록 앉아서 샤워합니다아~. 목욕 다 했으면 의자는 밀어 넣고 바가지는 엎어놓고 나오는 거 잊지 않으셨지라?" 시골길을 달릴 때도 목소리를 높였다. "논밭에 비니루 한 장 안 뒹구는 거 보이시죠잉? 개인용 재떨이를 갖고 다니는 흡연자도 있습니다. 지진 탓에 집을 다닥다닥 붙여 지어 방음(防音)이 거의 안 되는디, 시끄러워 어찌 사느냐고요? 그냥 참고 삽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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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정이 일본 역사에 대해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넘나들며 '구라'를 풀 땐 졸던 사람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일본 전국시대를 호령한 세 명의 장군이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쓰으~. 근디 성격은 완전 딴판이었지라. 울지 않는 꾀꼬리 일화 들어보셨지요잉? 오다는 '울지 않는 새는 새가 아니다'며 그 자리에서 목을 쳤습니다. 못생겼지만 잔머리 하난 비상했던 도요토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를 울게 하라'고 했답니다. 도쿠가와는 어찌했을까요. 인내야말로 무사장구(無事長久)의 비법! '새가 울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 했다지요. 이 중 일본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자가 우리에겐 불구대천의 원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니 역사의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도쿠가와의 별장인 니조성(二條城)에선 '비밀' 한 가지를 들려줬다. "이 성에 '세콤'이 있는디 찾아볼랍니까? 겁 많은 도쿠가와는 자객이 까치발을 하고 들어와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게끔 마루를 만들었답니다. 어떻게 했길래 소리가 났을까요? 요 밑을 보세요잉. 마룻바닥에 못을 팔(八) 자로 박은 거 보이지요? 요런 거 아는 가이드, 많지 않습니다~." 떠돌이 칼잡이처럼 표표한 분위기는 없으나 간혹 낭만 멘트도 날렸다. "천년 고도(古都) 교토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일까요? 봄? 가을? 저는 비 온 뒤의 교토를 젤로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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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 남자의 수다는 금세 샛길로 빠졌다. "일본 국민이 소식(小食)을 즐긴다고요? 없어서 못 먹습니다. 삼각김밥으로 점심 때우는 직장인들 수두룩하지요. 회식을 해도 2차 안 합니다. 막차 끊기면 비디오방, 캡슐호텔에서 자고 출근합니다. 캡슐호텔이 뭐냐고요? 천장이 조금 높은 관(棺)을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본엔 100엔(1000원)을 넣으면 샤워기를 1분간 쓸 수 있는 목욕탕이 있습니다. 1분 안에 머리까지 감기 빠듯하니 어느 무명 코미디언이 묘안을 냈다지요. 집에서 미리 샴푸를 머리에 발라 문지르면서 목욕탕까지 가서는 동전을 넣는 순간 빛의 속도로 헹궜답니다."
미스터 정의 정신 산란한 말 중 메모까지 해가며 열중한 대목은 이것이었다. "위 세척 향수라고 들어보셨어라? 이걸 마시면 트림을 해도 냄새가 안 납니다~. 발바닥에 붙이고 자면 몸이 해독되는 디톡스 파스도 있고요. 40도 열기로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일회용 안대도 등장했습니다. '물 반창고'도 있습니다. 손에 상처가 나도 설거지나 세수를 할 수 있게 코팅해준다니 기막히지 않습니까? 돋보기 달린 손톱깎이는 본 적 있나요? 20년째 경기가 바닥이지만 여전히 일본을 지탱하는 힘은 요런 잔머리, 징글징글한 창의력입니다. 이런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지요잉. 결론은, 지피지기(知彼知己)라야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것입니다아~."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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