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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외골수 과학자들

앤 셜 리 2014. 10. 14. 21:19


1989년 일본 메이조대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와 나고야대 아마노 히로시 교수가 청색 LED(발광 다이오드) 실험을 하다 전기로가 고장 났다. 실험에 필요한 고온 환경을 만들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내친김에 저온 실험도 해봤다. 그랬다가 뜻밖에도 청색 LED에 필수적인 고품질 질화갈륨 결정(結晶)을 생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 과학지는 '우연한 발견'이라고 했다. 맞는 얘기가 아니다. 1970년대 초부터 20년 가까이 하루 수십 차례씩 온갖 조건에서 실험해 온 결실이었다. 아카사키의 좌우명은 '홀로 황야를 간다'다.

▶니치아화학공업 연구원 나카무라 슈지는 '실험 결과야말로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2년 뒤 성공할 때까지 친구·동료와 약속을 일절 하지 않고 하루 100차례씩 실용화 실험을 거듭했다.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으려고 전공 서적이나 논문도 읽지 않았다. 그런 나카무라를 가리켜 아마노는 '실험의 신(神)'이라고 했다. 아카사키는 "모든 게 우연이다. 그러나 모든 게 필연이다"고 했다. 세 사람은 이 연구로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일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엔 '헨진(變人)'이 많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리말 '괴짜'보다는 의미가 더 세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교토대 마쓰가와 도시히데 명예교수는 그때까지 여권조차 없던 사람이다. 수상을 통보받고는 "외국 여행을 왜 해야 하느냐"고 했다. 생활 영어도 한마디 하지 못했다. 평범한 회사 엔지니어로 2002년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는 회사가 연구소장으로 승진시키려 하자 "연구만 하고 싶다"며 거절했다.

▶1949년 일본인 첫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유가와 히데키도 '헨진'에 가까웠다. 워낙 말이 없어 별명이 '말 안 하는 아이'였다. 나중에 오사카제국대 교수가 됐지만 연구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를 데려온 선배 교수가 "원래 다른 사람을 뽑으려다 네 형이 부탁해 뽑았더니 이게 뭐냐"고 했다. 아무 말 없이 질책을 듣던 유가와는 얼마 후 물질 근원 원자핵의 구성을 밝히는 논문을 썼다.

▶아카사키는 "LED 연구를 시작할 때 '20세기 중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랑곳 않고 제자 아마노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실험을 이어갔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아카사키'라는 별명도 붙었다. 일본의 노벨상은 정부·대기업의 두툼한 지원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지원에 앞서 더 필요한 것이 과학자들의 고집과 집념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