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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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도 제대로 못 쓰는 公共기관들

앤 셜 리 2014. 10. 25. 20:55

종종 가는 인왕산 자락 작은 공원이 새로 단장했다. 마무리 공사가 덜 됐는지 관할 구청이 내건 공사 안내 플래카드가 그대로 있다. "불편한 사항이 있으시면 말씀 해 주십시요."

'주십시요'는 '주십시오'가 맞는 표현이다. '~오'는 문장을 끝낼 때, '~요'는 열거할 때 쓰는 어미다.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이지 '있으시면'이 아니다. '말씀 해'는 '말씀해'가 옳다.

복지 도우미가 사는 곳임을 알리는 스티커에 '도움이 필요하세요!'라고 버젓이 적었던 구청이다. '?' 자리에 '!'를 적어 '당신은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엉뚱한 말을 늘어놓으면 되겠는가?

인터넷과 PC, 휴대폰 삼각 편대에 출판과 신문 등 활자 매체 영향력이 급감하는 가운데서도 예외적인 매체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내는 소식지다. 서울 웬만한 구청에서는 월 20만부 이상 발행한다. 소식지의 힘은 공공 기관이 이윤을 따지지 않고 발행하는 매체라는 점과, 각종 정보가 주민 생활에 직접 닿는다는 데서 나올 것이다. 주민센터 등에 놓인 각종 생활 안내문, 길거리 현수막 등도 같은 범주에 든다.

이 매체들은 영향력에 비해 그 내용을 담은 문장이 형편없을 때가 많다. 다른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얼마 전 내건 '동네 조폭 피해 신고 시 경미 불법행위 면책'이란 플래카드는 동네 조폭한테 당한 피해를 신고하라는 건지, 동네 조폭에게 자수하라는 건지 알쏭달쏭하다. 지난해 '13년 개인 소지 총기류 일제 점검'도 마찬가지였다. 13년 된 총기를 점검하겠다는 건지, 13년 만에 점검한다는 소린지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 적은 안내문이었다. '○○가 기부한 환경보전기금으로 수목식재하여 복원한 구간입니다'라는 북한산 국립공원 안내문은 또 어떤가? '나무를 심어'라고 하면 될 걸 어렵게 적었다.

부실한 공공 문장은 시책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무관심과 불신을 불러오기 쉽다. 안 그래도 컴퓨터와 스마트폰 영향으로 글쓰기와 사고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아동·청소년에게는 독극물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국어 진흥 조례를 만든 전남을 비롯해 서울 송파·성북·중랑구, 경기 광명시, 경남 하동군 등 지자체 10여 곳이 내년에 복지 예산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공공 문장 감수와 국어 교육 사업을 벌이겠다고 한다. 우리 문화의 뿌리를 튼튼히 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양영채 사단법인 우리글진흥원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