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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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검프, 진융

앤 셜 리 2015. 5. 25. 13:53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만나면 마냥 붙잡혀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 '대부' '쇼생크 탈출' '포레스트 검프'다. '대부'를 보고 나면 차갑고도 뜨거운 사내들 세상을 덩달아 살아 본 듯 비장해진다. '쇼생크 탈출'이 희망·우정·인내의 끝에서 터뜨리는 응징의 쾌감에 전율한다. '포레스트 검프'에선 시종 낙관(樂觀)과 선의(善意)가 일궈 내는 승리에 미소 짓는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무엇을 집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명대사처럼.

▶검프는 IQ 75, 지적 발달 장애인이다. 하지만 정직하고 순수하다. 세상 보는 눈이 누구보다 맑다. 그런 눈으로 미국 현대사(史) 현장마다 끼어들어 시대를 관찰한다. 베트남전 영웅, '핑퐁 외교'의 탁구 스타가 되고 워터게이트 현장을 신고한다. 새우잡이로 큰돈을 벌고 애플에 투자해 사업가가 된다. 영화는 말한다. '당신도 검프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중국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내 역할 모델은 검프"라고 했다. '단순하고 신념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다. 마윈은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연설에서도 자신의 성공을 검프의 새우잡이에 비유했다. "고래잡이로 돈 버는 사람은 없어도 새우잡이의 꿈을 10년 지키면 돈을 번다"고 했다. 스스로 말했듯 그는 잘생기지도 않고 돈도 배경도 없었다. 취업에 서른 번 넘게 미끄러졌다. 8800만원으로 창업해 틈새시장 전자상거래에서 결국 해냈다.

▶마윈은 상상력의 원천으론 진융(金庸·김용) 무협지를 꼽았다. 진융은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박사다. 홍콩 일간지 밍바오(明報)를 창간해 주필로 일했다. 그는 1950년대부터 20년 동안 '영웅문'을 비롯한 무협소설 열다섯 편을 썼다. 무협지를 중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학 장르로 끌어올렸다. 마윈에겐 '셰익스피어 같은 존재'다. 마윈은 지금도 진융 소설을 읽으며 머리를 청소한다고 했다.

▶쉰한 살 마윈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를 이끈다. 재산 39조원으로 중국 최고 부자다. 스티브 잡스와 삼국지를 거론하는 게 더 어울릴 법하다. 대신 마윈은 조금 모자란 검프와 통속 소설로 통하는 무협지가 밑천이라고 했다. 그의 영어는 그리 반듯하지 않다. 하지만 키 162㎝ '경영 거인'은 전혀 막힘 없이 쩌렁쩌렁한 연설로 청중을 압도했다. 우리 재벌 2~3세 경영인에 그렇게 패기만만한 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마윈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검프처럼 긍정적인 마음과 맑은 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