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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양쪽 날개로 날면, 양쪽 날개가 부러지는 세상

앤 셜 리 2017. 8. 8. 13:57

범죄학자 오윤성 교수가 새 책 '범죄는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를 냈다. 실제 사건을 예로 들며 피해자가 되지 않는 노하우를 제시했다. 늦은 밤 으슥한 곳 혼자 걷지 마라, 혹여 늦은 밤 택시를 타게 되면 가족에게 반드시 차 번호를 알려둬라, 과도한 노출을 하지 마라…. 그의 책을 읽으며 걱정이 좀 됐다. 이런 지적에는 늘 "왜 피해자인 여자에게 책임을 씌우는가" "여혐이다" 같은 반발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 교수 역시 "사실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고 했다.

"자동차를 안전하게 타려면, 엔진 오일도 보고 타이어도 정비해야 한다. 귀찮은 일이다. 반대로 '다 자동차 회사 책임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방치했다가 사고 나면 죽는 건 개인이다. 죽임을 당하고 나서 처벌을 세게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는 범죄학 중에서도 '피해자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당연히 '피해자 되지 않기'가 그의 전공인데, 일부는 그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노려본다.

남성들도 그에게 화를 낸다. '강력범죄의 피해자 88.9%가 여성'이라는 대목을 들어 "확인되지도 않는 통계를 갖다 쓰면서 남성을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한다"고 비난한다. 이 수치는 통계청 공식 자료다. 2015년 살인·방화·성폭력 등 강력범죄 피해자 3만1431명 중 88.9%인 2만7940명이 여성이었다. 피해자 10명 중 9명이 여성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거론하는 것조차 기분 나쁘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외눈으로 취사선택해 비난하는 태도는 언제나 있어 왔다. 예전엔 이불 속 구시렁거림으로 끝났지만, 자극적인 주장 하나가 '인터넷 여론'이 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연구자들이 '한쪽 진영'에 설 때 오히려 심간(心肝)이 편해지고, 더 안전해지고, 불러주는 곳도 많아진다.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를 두고 신중한 범죄학자들은 '여성 혐오'라고 단정 짓기 주저한다. "원래 강력범죄는 약한 존재를 고르게 되어 있는데, 그래서 여성과 장애인 노약자가 타깃이 된다"는 것이다. 약자를 고르다 보니 여성이라는 것. 결과는 같지만 '원인'이 다르니 처방도 달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지난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사회학자, 여성학자들 중심으로 '여혐 범죄' '여혐 사회'라고 단정 짓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혐이다' '아니다' 인터넷에서 싸움이 난무하는데도 여성학 범죄학 사회학 법학 전공자들이 모여서 토론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단정하고, 추궁할 뿐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는 지난 1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명예훼손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법원 판결문은 이렇게 썼다. "표현의 자유와 가치판단의 문제로, 시민과 전문가들이 상호 검증하고 논박할 사안이지 법원이 형사처벌할 사안이 아니다."

박 교수 책이 논란이 됐을 때 지식인급의 유명 인사는 "그 여자는 미친 X"이라고 했다. "어느 대목이 그랬나" 물었더니 "책은 못 읽었고, 인터넷에서 보니까" 했다. 책을 읽었다는 사람은 기자 몇몇을 빼고 주위에서 거의 본 적이 없지만, 모두 다 '박유하 문제 전문가'로서 판단은 끝나 있었다. '제국의 위안부'는 거칠고 선정적인 표현이 있지만, 일제 동원 체제에 봉사한 조선인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다룬다. 다시 볼 대목도, 반박할 대목도 많다. 그를 소리 내 비난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지만, 그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인터넷이 무섭다'며 달아났다. 검찰이 박씨를 기소하자 학자 190명이 기소 반대 성명을 냈지만,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두루뭉술한 논지였다.

무지(無知)로는 무지를 깨닫지 못한다. '지성'들이 단합해 용기를 내야 한다. 양쪽 날개로 날면, 양쪽에서 돌 맞는 기형의 시대를 바로잡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