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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1) 정주영(1915~2001)

앤 셜 리 2017. 12. 3. 18:43

역사적 인물의 이름에는 직함이나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정주영은 이 시대를 살고 간 특이한 인물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현대'라는 기업을 뺄 수 없다면 그 기업을 일으킨 창설자가 역사에 남을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그는 보통 사람인 우리와는 전혀 다른 손금을 쥐고 나왔을 텐데 나는 그의 손금을 본 적은 없다.

나는, 정치를 시작하여 정치 일선에서 밤낮으로 같이 지내던 시절의 정주영만 알 뿐이지, 그가 어떻게 현대를 시작했고 어떻게 현대를 키웠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그는 1992년 봄이 되기 전 어떤 추운 날, 나를 시내 모처에서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기업으로 크게 성공한 그가 대학에서 한평생을 보내고 은퇴한 나를 왜 보자고 하는지 그 뜻을 잘 모르고 만났다. 그는 같은 내용이 적힌 서류 2통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 썩으니 기업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돈은 내가 벌어서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힘을 합하여 정치를 바로잡는 일을 한번 해 봅시다." 그 서류는 정주영과 김동길이 의형제를 맺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의형제가 되는 것을 문서로 밝힌다는 일이 내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는 문서 2통에 이미 자기 도장을 찍어 와서 나에게도 날인할 것을 요구했고 나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었다. 우리가 나눠 가진 그 문서 한 장은 내가 여러 해 간직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의형제 문서'에 지장을 찍다

그 자리에서 정주영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이제 머지않아 대통령 선거가 있을 터인데 우리가 만드는 당의 대통령 후보는 국민 사이에 인기가 좋은 김 교수가 나가야지요." 나는 그에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담벼락만 보고 앉아 있었다. 그 후 곧 통일국민당이라는 새로운 당이 출범했고 그는 당대표가 되었고 나는 최고위원이 됐다. 그 신당은 현대의 그 많은 직원을 동원해서 날마다 활발하게 움직여 그해 3월 총선에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해 31명을 당선시켰고, 나는 서울 강남갑에 출마해서 당선됐다. 그리고 우리 당은 그해 12월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후보 지명 전당대회를 5월로 예정하고 있었다.

전당대회를 며칠 앞두고 정주영은 내가 빌려서 살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혼자 찾아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야 해요." 엉뚱한 이야기를 들은 내가 "나이도 이제 60이 넘었고 결혼할 때는 지났습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김 교수도 결혼해서 가정이 안정되어야 해요. 김 교수가 결혼한다면 내가 200억은 줄 수가 있는데." 나는 분명히 대답했다. "앞으로 내가 결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다음 날 이른 아침 광화문 당사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말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아무래도 내가 나가야겠어요. 나는 이번밖에 기회가 없지만 김 교수는 아직 나이가 있으니까 다음 대선에 출마해도 될 겁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파악하려고 망설이다가 단 한마디도 따지지 않고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대답했다. 당대표였던 그는 나의 그 한마디로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후보 지명 전당대회에서 김광일 당원과 이주일 당원이 각각 발언했다. "왜 약속한 대로 하지 않고 정 대표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가십니까?" 그러나 내가 반발하지 않는 한 당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하면 200억 주겠다" 약속

대선 투표 바로 전날 효제국민학교 교정에서 마지막 선거 유세를 할 때까지도 통일국민당 후보에게 전달되는 쪽지들의 내용은 미국 CIA나 그 나라의 방송사 CNN의 여론조사 결과가 한결같이 정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고 점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CIA와 CNN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한국 대선에 관심이 많은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이 그날 밤 상황이었다. 그다음 날 밝혀진 대선 결과는 정 후보 주변 사람들의 추측이나 보고와는 정반대였다. 통일국민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정주영이 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여당으로 들어간 김영삼에게 "군인들이 당신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줄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내가 정당을 만들면 우리 당 대통령 후보로 나가세요" 하고 권면한 사실이 있다. 같은 대통령 후보가 되어 자신을 압박한 정주영을 김영삼은 용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 멀지도 않을 어느 내일,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낯선 땅에서 정주영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만나면 그의 손을 꽉 잡으면서 "형님, 오래간만입니다. 그동안 편안하셨나요"라고 한마디 하고 난 뒤 "그런데 형님은 통일국민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 어깨에 지워놓고 이 동생을 왜 단 한 번도 알은척하시지 않았나요?" 하고 물을 것이다. 물론 그는 웃고만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현대의 기적'을 창출한 정주영은 이 시대의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