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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21) 독신의 외로움, 결혼의 노여움

앤 셜 리 2017. 11. 26.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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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연에서 꼭 연애를 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연애하면 괴롭고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 괴로움과 외로움 중 무엇을 택할지 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리 삶이 그렇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는 있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연애하지 않는 사람들을 '결핍이 있는 상태'라고 다양한 경로로 주입시킨다. '왜 이렇게 외로울까?'란 질문에 많은 사람이 '연애하지 않아서!'라고 대답하는 건 그런 맥락이다. 연애를 해야 영화나 요식업 같은 데이트 시장이 열린다. 연애를 해야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를 낳아야 육아 시장과 사교육 시장이 열린다. 연애를 권하는 사회 구조는 이런 맥락 안에서도 살펴봐야 한다.

유럽에선 이미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는 커플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졸혼이란 말이 등장했다는 건 결혼 제도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과거와 생애주기가 달라지는 100세 시대. 연애와 결혼은 조금씩 형태와 구조를 달리하게 될 것이다.

좋은 결혼 생활이 어느 정도 힘든지에 대해 얘기한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 있었다. 그는 넬슨 만델라의 예를 들었다.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겪으며 힘든 역경을 이겨낸 넬슨 만델라가 이겨내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 자신의 아내였다는 것이다.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은 독신에는 외로움이, 결혼 생활에는 숨 막힘과 노여움, 좌절이 따른다고 얘기하다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람은 어느 상태에서든 행복을 누리는 재간이 썩 뛰어나지 않다."

이쯤에서 내가 깨달은 것 하나를 덧붙이면 이렇다. 행복은 욕망이나 쾌락과 달라서 행복해지는 일 자체가 엄청난 재능이라는 것이다. '빨강머리 앤'의 말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뭔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그 즐거움의 절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즐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란 틀림없이 나만의 것이니까요!"

백영옥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