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책.

열흘 간의 만남. 1

앤 셜 리 2024. 10. 19. 06:36


서문

형식에 관계없이 오현스님과 신경림 시인이 10여차례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스님들의 삶, 시인의 생각, 서로 묻고대답하는 형태의 글.
신경림ᆢ1935년 충북 충주
동국대 영문과 졸업
농무,새재, 길,가난한사랑 노래, 쓰러진자의 꿈,뿔,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 1,2, 등이 있다.
조오현
경남 밀양 1932년 출생
1939년 절간 소머슴으로 입산, 산에서 살면서도 산을보지못하고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시와시조 백여편을 썼다.
지금은 말을 너무 많이 하여 혀가 빠져버려 내설악 백담사 무금선원에 기거하고 있다.
이책 발행일 2004년.

절 입구에서 백담사까지는 7키로
신경림 시인 ᆢ풍광이 너무 좋아 피곤한줄 모르고 걸어왔다

오현스님ᆢ2018년 5월 26일 (향년 86세 입적)
신경림시인ᆢ2024년 5월 22일 (향년 88세 사망)

필사

떠도는 자의 노래

외진 별정 우체국의 무엇인가를 놓고 온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길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세상 오기전 저 세상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세상에
버리고 간것을 찾겠다고 헤메고
다닐지도 모른다
ᆢ신경림ᆢ

여행, 길에서 돌아본 인생의 뒷모습

시인ᆢ샌프란시스코는 원래 멕시코땅이었다.
미국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5%밖에 개발을 안했다.
석유도 자기것은 가만 놓아두고 남의것만 넘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어요
스님ᆢ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장점은 젊은이들의 자립정신과 어른들의 기부문화는 본받아야 합니다
미국불교는 용광로에 불교를 넣어 불순물을 제거해서 미국화된 새로운 불교를 탄생시키고 있어요.
왜곡되지 않은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드린다는 점에서 동양의 불교도보다 우월한데가 있습니다.
서양의 불교가 한국사회로 역수입되는 현상
출가자가 승려가 되는 이유는 발심출가와 인연출가가 있다.
발심출가란, 부처님처럼 인생에 깊은 회의를 가지고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출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인연출가란,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해 출가하는 경우지요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해방 이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절에 의탁하면서 출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가란 어떤 인연으로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출가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ᆢ오현스님ᆢ

서양의 한 불교학자가 부처님의 출가는 "위대한 포기"라고 했는데 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부모처자로부터 육친 출가.

법계출가法界출家 법계란 진리의 세계를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진릴 그 나름의 논리와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독단과 편견은 자칫하면  자신과 이웃을 오류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 수양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자체를 자비와 지혜로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어둠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자기를 성찰하는 명상을 하도록 권합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살피다 보면 탐욕이나 이기주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스님 ᆢ미국의 탐욕과 중국의(사회주의탐욕이 더욱 심함) 탐욕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은 인간의 탐욕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시인ᆢ 글쎄요  저는  인간 본성이 탐욕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몰락도 자기 개인적인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 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에 비해 서양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탐욕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를 유지하다 보니까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지요 그런 뜻에서 인간의 역사는 탐욕의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스님ᆢ그것은 어쩌면 식탐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많이 먹는 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현대는 속도를  중시하고 우리가 달려서 도달하는 데가 어디입니까 결국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바르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허망하게도 실체가 없는 욕심 때문에 쫓기면서 허덕이며 산다 사실은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지요 ㆍ신경림ㆍ

급행열차를 타고 가다가
이렇게 서둘러 타고 갈 일이 무언가
환한 봄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 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예순에 더 몇 해를 보아온 같은 풍경과 말들
종착역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복사꽃 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소매잡는이 있으면 하룻밤 술로 지새우면서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
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 산은 파랗고 강물도 저리 반짝이는데

선생님 시를 읽다 보면 중이 돼야 할 팔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중은 평생 느릿느릿 살아도 시비할 사람 별로 없습니다
천천히 살아가라는 이유는 욕망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외부적 환경을 바꾸기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쉬어주어야 합니다.

스님ᆢ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했는데 그 종착역인 죽음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시인ᆢ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부는 꽃이 될 것이고 일부는 나무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물도 되고 바람도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죽음이 마냥 두려운 것만은 아니고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문학도 종교도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인생이라는 여행은 항상 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안겨주지만 많은 사람이 이 여행을 즐겁고 편안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만 가지 노력을 하지만 성공적인 여행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사랑, 그 행복과 고통의 이중주

스님ᆢ저는 이 여행을 육도윤회를 경험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윤회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세계를 돌고 도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왜 인생을 육도윤회라고 하는가 하면 살다 보면 하루에도 수없이 육도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이란 땅속에 있다는 감옥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이라고 합니다.
아귀는 몸뚱이는 남산만 한데 목구멍은 바늘귀만 해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늘 배가 고픈 고통을 말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남산보다 큰데 그것을 채우지 못해 늘 갈증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축생은 동물의 세계입니다.
아수라는 싸움을 좋아하는 귀신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수시로 교체하며 선악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천상이란 항상 즐거움이 넘치는 세계를 말합니다 중생은 이러한 육도의 세계를 무시 이래로
윤회해 왔다는 것이 윤회설의 골자입니다.
전생이나 내 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더 자주 경험하게 되지요.
채워지지 않는 욕심 아귀의 세계
수시로 싸움 아수라 세계.
그런가 하면 불쌍한 사람을 보면 자비심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순간이 천상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시인 ㆍ윤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세계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도덕적 경고입니까?
스님ㆍ 솔직하게 말하면 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부처님도 이런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받으면 직답을 피했습니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있다, 없다로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정직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그리하여 다시 긴 여행을 떠난다면 우리는 꽃이 되고 물이 되고 꾀꼬리  울음도 될 것이고 나중에 우리는 같은 물이 되어 흐르기도 하고 같은 구름이 되어 날아다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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