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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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망우(巖壁忘憂)

앤 셜 리 2010. 6. 12. 15:04


마운틴 오르가슴(mountain orgasm)’. 나는 등산의 쾌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살아 있는 동안에 오르가슴을 최대한 느끼다가 가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다. 낙(樂) 중에서 최고의 낙이 바로 ‘마운틴 오르가슴’이 아니겠는가. 몸이 찌뿌드드하거나 감기·몸살 기운이 있다 싶으면 바위산에 오른다. 3~4시간 정도 바위산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고, 삶의 의욕이 생긴다.

마운틴 오르가슴의 이론적 근거는 바위다. 바위 속에 함유되어 있는 광물질에서 지기(地氣)가 나온다. 이 기운이 인체의 피 속에 있는 철분을 타고 들어와 뇌세포를 활성화시키고,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 나의 가설(假說)이다. 전국을 여행하면서 30리 밖에서라도 바위산이 나타나면 한번 올라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우뚝하게 솟은 바위를 바라다보면 입에 침이 넘어간다. 1주일에 한번 정도 바위를 주식(週食)할 수 있는 인생은 상팔자(上八字)에 틀림없다.

바위 찾아 3만리로 돌아다니다 보니 드디어 바위 전문가와 조우하게 되었다. 산악계에서 암벽고수(巖壁高手)로 알려진 김용기(金龍基·55) 선생이다. 20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약 30년 동안 전국 바위산의 암벽을 모조리 타본 사나이다. ‘한국 암장순례’라는 책 2권은 그가 전국 300개의 바위절벽을 어떻게 오르내렸는가를 기록한 보고서다. 보통 한군데의 암장(巖場)에 10개의 코스가 있으므로, 300개의 암장에는 3000군데의 코스가 있다. 이 3000군데를 올라가는 세밀한 지도 책을 그가 만든 것이다.

김용기는 한국 암벽의 ‘모암(母巖)’이라 할 수 있는 북한산 인수봉(仁壽峰)만 해도 약 3000번 이상 올라간 인물이다. 물론 밧줄을 걸고 절벽을 올라갔다. 한세상 태어나서 그가 한 일은 목숨을 걸고 바위절벽에 올라간 일이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 왜 절벽에 올라갔는가?”라는 질문에 “50억 빚이 있는 사람이라도 밧줄을 감고 천 길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 그 근심을 잊어버린다. 섹스도, 골프도, 술을 먹어도, 어떤 도박을 해도 근심을 잊어버릴 수 없지만 암벽을 타면 잊어버릴 수 있다. 바위에 매달려 있을 때면 부귀(富貴)와 빈천(貧賤)의 차별이 없다”는 대답이 되돌아 왔다. 30년 암벽 인생의 철학은 ‘암벽망우’(巖壁忘憂)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