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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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올인하는 나라

앤 셜 리 2010. 6. 12. 15:08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세상이 온통 부동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라 말이다. 온 국민의 관심사와 판단 잣대의 한복판에 부동산이 있어, 4800만이 부동산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부동산 못하면 낙오자 취급받는 그런 나라 말이다.

현 정부 들어 아홉 번째로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 대해 국민 반응이 신통찮다. 이걸 놓고 정부 사람들은 또 ‘부동산 언론’ 탓을 대며 구시렁댈지 모르나,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자업자득일 뿐이다. 세금폭탄 터뜨리고 금융규제로 겁준다고 해결될 만큼 단순한 일이 아님을 국민들이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은 경제 이슈의 차원을 넘어 총체적 사회문제의 뿌리가 됐다. 계층·세대 갈등과 박탈감·무기력증, 근로의욕 상실 같은 국가의 온갖 기본문제들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파생돼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건교부 홈페이지의 시민 게시판을 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실감이 난다.

“군대 갈 아들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가 갈린다. 죽도록 공부하고 일해도 내 집 한 칸 마련할 길이 없는 이따위 나라를 위해 내 아들이 군대 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분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강재혁씨)

어느 나라에나 부동산 과열은 있다. 중국·인도·영국 등이 지금 집값 급등으로 고민 중인데, 이들 나라에서 부동산이란 투기꾼·상류층의 국지적 문제일 뿐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대다수 서민이 부동산과 담쌓고 살아도 큰 지장 없는 게 당연하다. 반면 2006년 대한민국에선 부동산이 개개인의 경제적 운명, 나아가 삶의 희망과 행복도까지 좌우한다. 부동산은 인생의 성패(成敗)를 가름하는 기준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부동산이 국민의 삶을 이토록 강력하게 장악했던 나라는 없었다.

“다섯 살짜리 고만한 녀석들 둘 잠들어 있는 모습 보면서 무능력한 내가 이 땅에 아이 둘을 낳은 것이 참 죄스럽게 여겨졌다. 아이 낳는 것은 죄악이다.”(김정애씨)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온 국민이 부동산 전문가 되기를 강요당하는 기형적 집단심리다. 부동산이 4800만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자리 잡았다. 도대체 서민까지 부동산을 기웃거리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건교부 게시판의 시민들은 탄핵한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부동산 대책의 목표는 요컨대 부동산에 신경 쓰지 않아도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부동산보다 가족과 건강과 취미를 더 생각하며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나도 이런 비상식적인 세상이 겁이 나고 내 자식, 그 후대들에 대하여 너무너무 걱정이 된다.”(배형곤씨)

집 있는 사람이라고 왜 이런 세상이 걱정되지 않겠는가. 정말 걱정되는 것은 ‘일부 투기꾼’만 잡으면 되는 듯 덤벼드는 정부의 무모함이다. 4800만의 부동산 집단심리를 추스르려면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국민들의 주택수요를 만족시키며 시장(市場)을 잘 달래 가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금으로 겁주고 규제로 윽박지르려고만 한다.

“감사합니다. IMF(외환위기)가 그립게 만들어 주셔서. IMF 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IMF만 극복하면 된다는….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조재광씨)

어느 틈엔가 부동산은 온 국민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절망의 화두(話頭)가 됐다.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가 변변한 자기반성이 없는 데 대해 국민들은 더 절망하고, 투기꾼·언론 탓을 반복하는 당국자들에게 좌절한다.

경제부총리는 11·15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지금 무리한 대출로 집 사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국민 가슴에 못질한 건교부 장관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예의 ‘추병직표 웃음’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는다. 정말이지, 이렇게 뻔뻔한 정부도 세상에 없다.

박정훈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