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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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치룬 60만의 내 아이들아

앤 셜 리 2010. 6. 12. 15:07

다녀오겠습니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현관을 나서는 아들의 야윈 어깨에 유독 마음이 쓰인다. 군복만 입지 않았을 뿐 전쟁터에 내보내는 심정이 이와 다를까 싶다. 등이 조금만 실팍했어도 이토록 울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밤벌레처럼 포동포동한 아들을 둔 친구도 제 자식은 늘 뼈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니 세상의 모든 부모는 연민 없이는 자녀를 바라보지 못하는가 보다.

어제, 수험장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느라 어질러진 부엌으로 돌아와 보니 싱크대 풍경이 꼭 내 마음 같았다. 입시생 엄마 노릇 1년이면 5년치를 한꺼번에 늙는다며 한탄하던 일은 까마득히 멀어지고 아이에게 해준 거라곤 겨우 더운 밥 챙겨준 것밖에는 없었구나 싶다. 긴 숨을 내쉬며 어깨의 긴장을 풀어 본다. 막 연기(演技)를 끝내고 무대 뒤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다. 어제 그저께, 그야말로 우리는 연기를 했다. 아들과 나는 조금도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은 듯 농담을 하고 장난을 쳤다. 그러나 애초에 그쪽으로는 끼가 없는 가문인지 그 어설픈 연기는 내내 덜커덕거리기만 했다. 시험 전날 밤에는 “엄마 귀가 너무 뜨거워요” 하기에 귀를 두 손으로 감싸고 조용히 말해 주었다. “응, 이건 감기는 아니고 아드레날린이 좀 심하게 분비된 거야.” 무면허지만 명의(名醫) 된 지가 오래다.

이 풍경은 올해 수능을 치르는 60만 가정이 비슷했을 것이다. 자녀를 배웅한 엄마들은 모두 돌아서서 아릿한 눈시울을 문질렀을 것이다. 60만의 수험생이 모두 내 자녀 같은 심정이다. 60만의 엄마들이 모두 내 자매 같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모두 같은 전장(戰場)에서 눈물과 땀과 심장을 쥐어짰으니.

60만의 내 아이들아. 모든 엄마의 이름으로 고백할 게 있다. 미안하다고. 여름 끝 무렵부터 이른 낙엽처럼 노랗게 타 들어가던 얼굴을 보면서도 쉬어가며 하라고 말해 주지 못했던 것. 네 과목 중 세 과목을 만점 받은 학생의 공부방법이 실린 신문을 오려 국그릇 옆에 놓아 두었던 것. 간식을 주는 척하며 잠들었나 감시하러 들어갔던 일. 많이 아프다는데 일단 학원은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었던 일. 너의 식성보다는 ‘수능점수 향상시키는 식단’을 냉장고에 붙여 두어 물심양면으로 스트레스를 주었던 일. 그리고, 그리고….

그러나 60만의 아들딸들아. 시험이 끝났으니 먼저 엄마를 꼭 껴안아 주어라. 사랑의 이름으로 너희들에게 강요한 것이 폭력으로 느껴진 순간도 있었겠지만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삶이 힘겨운 부모님 마음속의 상처와 응어리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들은 새벽에 잠들었다 아침에 등교하는 너희들 뒷모습을 보며 사실은 오늘 하루 결석하고 푹 자라고 손목을 붙들고 싶었단다.

아침에 집을 나섰던 너와 고사장을 걸어 나온 너는 이미 다른 사람이다. 오랜 항해를 마치고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처럼, 너희들 역시 고난과 격랑의 항해를 겪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성숙과 지혜를 안고 걸어 나올 것이다. 싸늘하고 흐릿한 초겨울의 대기는 단숨에 힘을 잃고 말겠지. 태양 같은 너희들의 그 기운을 누가 당해낼까. 이제 너희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좁은 문을 막 지나는 참이다.

왕관과도 바꾸지 않을 나이, 너희는 어떤 결과를 받아 들더라도 주어진 것을 가지고 삶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짓눌린 가슴 활짝 열고 깊은 숨을 쉬어 봐. 이 아침, 무지갯빛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너희들은 차마 질투도 못할 만큼 눈부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