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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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81회 생일상 받은 박경리 선생 “너무 과분… 내가 줄 게 많아

앤 셜 리 2010. 6. 12. 15:09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생일잔치엔 ‘땅 냄새’가 가득했다. 인터넷 다음카페 ‘토지문학관’ 회원들은 박 선생의 81회 생일을 이틀 앞둔 16일 원주시 단구동 토지문학공원의 박 선생 옛집에서 생일상을 마련했다.

전국 팔도의 회원들은 저마다 한두 가지씩 음식을 싸들고 찾아와 ‘팔도 생신상’을 차렸다. 갈비찜 갓김치 명태전 고사리무침 미역국 등 20여 가지의 음식이 상에 올랐다. 한 여성 회원은 “아들·남편과 밤새 전을 부쳤습니다”라고 했고, 마산의 한 회원은 “시어머니를 졸라서 갓김치를 얻어 왔어요”라고 했다.

잔칫상이 차려진 옛집은 1980~ 1998년까지 박 선생이 토지 4, 5부를 집필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잔치에는 외동딸이자 김지하 시인의 부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 관장, 소설가 박완서·오정희씨, 김성훈 상지대 총장, 영국에서 귀국한 손자, 토지문화관에서 집필 중인 작가들, 그리고 서울 마산 부산 청주 천안 등 각지의 토지문학관 회원 26명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자리는 한 작가의 생일잔치를 넘어서서 ‘토지’라는 우리문학의 우뚝 선 봉우리를 다시 돌아보는 문화모임이 됐다. 박경리 선생은 “오늘 여러분이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다”면서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내가 주어야 할 것이 많아진 것”이라며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잔치 자리에서 김성훈 상지대 총장은 박 선생의 비화 하나를 소개했다. “소설을 보면 용정 뒷골목까지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요. 그런데 선생은 실제로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는 거예요. 중국 지도 보며 상상력으로 묘사하셨다는데 너무 정확해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은 무당’이라 했습니다(폭소).”

박경리 선생은 이렇게 답사했다.

“여러 해 전, 양계장에서 계분(鷄糞)을 얻어다가 유기농 거름을 만들며 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열등감이 있어요. 운동에 나서지도, 구호를 외치지도 못했어요. 그분들보다 좋은 집에서 커피 마시고 포장된 인생을 살았어요.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에 대한 콤플렉스가 해소됐어요. 노동에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도 ‘글 쓴다’고 안 해요. ‘일한다’고 그래요. 하여간 (생신상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 과분합니다.” 손자 김세희씨는 김 선생에게 “제가 손자 볼 때까지 사세요”라고 인사했다.

(원주=이혁재기자 (블로그)elvi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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