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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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진짜 부자

앤 셜 리 2010. 6. 14. 22:30

어떤 목사님이 이런 사람이 부자라 말씀하시는데, 귀가 확 열립니다. 친구의 부와 명예, 미모에 질투하지 않고 축복해줄 수 있는 사람! 남을 위해 지갑을 열 때 아깝지 않은 사람! 내 아이가 보통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밥 한 그릇, 김치 한 종지, 그 일용할 양식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 새 소리에 마음을 열고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냉소적인 비판보다는 부드러운 칭찬에 익숙한 사람! 죽음에 자신 있는 사람!

몇 개나 해당 사항이 있으십니까?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라면, 그 호지가 사랑했던 라다크 사람들이라면 모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참 모순적인 말이지만, 그 모순 때문에 오래 품게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삶 속에서 오래 묵힌 지혜의 힘으로 미래를 건설해야만 미래에도 희망이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화계사에서,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느릿느릿 맨발로 걷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역시, 기분 좋은 사람이었어요. 선한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정화시키고 마음을 충만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금권 만능주의가 현대판 노예제도라 지적하는 그녀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밥을 지어먹고, 함께 책을 읽고, 마음이 담긴 의견을 나누는 저 사소한 일 속에 삶의 희망이 있다고 조용히 말합니다.

그리고 보니까 현대인들은 잘 나갈수록 시간까지 돈이고, 그만큼 시간에 쫓깁니다. 어쩌면 잘 나가는 현대인은 바쁘다는 노래 외에는 생명의 노래가 없는 진짜 가난한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미래’속 라다크에선 시간은 돈이 아닙니다. 시간은 삶을 드러내는 여유인 거지요. “라다크에서 시간은 느슨하게 측정된다. 그들은 ‘내일 한낮에 만나러 올게, 저녁 전에’라는 식으로 몇 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말한다.”

요즘 우리는 배우자감으로도 소비가 자유롭고 소비가 어울리는 돈 많고 잘 생긴 미남미녀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라다크 사람들은 외모가 아니라 사람들과 잘 지내는지, 공정하고 관대한지가 관건이랍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내면이 어떤가, 성품이 중요하죠. 여기 라다크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외모를 따지나 성품을 따지나 따지는 건 같다구요? 아닙니다. 외모가 경쟁적일 때는 시기와 질투를 부르지만, 성품이 중시될 때는 공동체에 훈풍이 붑니다. 라다크에 가기 전엔 호지도 개발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라다크가 그녀의 생각을 바꿨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앞만 보면서 이기적으로 사는 불쌍한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은 것은 그럼으로써 그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기 때문이지요. 잘 산다는 것은 일용할 양식으로도 너무도 충분한 선한 이웃들과 함께 밥을 지어먹는 일입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이웃을 이해하는 부피만큼 우리는 부자인 것입니다.

수원대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