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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386의 봉기

앤 셜 리 2010. 9. 6. 17:11

나는 푸시맨이 되었다. 좋은 점은 전철을 공짜로 탄다는 것, 팔 힘이 세진다는 것, 게다가 다른 알바에 전혀 지장을 안 준다는 거야.’

젊은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눈으로 외환위기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 현상을 다뤘다. 2000년대 한국 문학의 화제작으로 늘 꼽힌다. 오늘의 한국 소설에서 청춘의 표상은 백수 아니면 ‘알바’ 혹은 ‘프리터’(freeter)족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의 주인공도 20대 청년백수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편의점 알바, 백수로 고시원의 쪽방에서 살다가 ‘퀴즈쇼 선수’라는 이색 직업을 갖는 과정을 따라간다.

청년 실업의 현실과 포스트 386세대의 무기력한 내면 풍경을 그린 ‘퀴즈쇼’에 대해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은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란 책의 추천사에서 ‘20대의 모습을 잘 반영한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88만원 세대’란 우리나라 20대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이 88만원이라는 계산을 토대로 한 포스트 386세대 명명법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40~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세력이 20대를 착취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수를 제외하고는 88만원 이상의 소득을 현재 20대 세대가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작가 김영하는 “이제 386세대와 포스트 386세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최근 사석에서 진단했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 찬반논란이 드디어 표면화된 그 싸움의 서막이라는 것이다. 충무로를 장악한 386 영화인과 평론가들이 ‘구성이 엉성하다’ ‘애국심 마케팅이다’라고 혹평하자, 20대를 중심으로 한 대중 관객들이 사이버 공간을 활용해 포스트 386세대의 봉기를 주도했다. 30대 후반인 작가 김영하는 “386이 모든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반면, 오늘의 20대는 대부분 실업자이기 때문에 주류사회에서 내몰렸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고, ‘바보 영구’로 각인된 심형래 감독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풀이했다.

‘디워’를 TV 생방송 토론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던 386세대 평론가 진중권을 향해 ‘안티 진중권’ 운동을 주도하는 네티즌들은 대부분 포스트 386이다. 그들의 집중포화에 시달린 끝에 ‘열받은’ 진중권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아그들 왔냐.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짓도 통하는 사람한테 해야지”라며 ‘디워’옹호자들을 ‘어린 아이’ 취급하면서 조롱했다. 이게 또 요즘 사이버 공간에서 포스트 386세대의 분노를 들불처럼 번지게 하고 있다. 386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변혁의 세대였지만 포스트 386의 눈에는 새로운 ‘꼰대’로 비치고 있다. 진중권을 비판하는 젊은 네티즌들의 목소리는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느냐’는 반발심을 담고 있는 것이다.

현실 공간에서 386과 포스트 386은 경쟁사회의 원리에 따라 한판 승부를 벌일 때가 됐다. 정치·사회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가 포스트 386세대를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비판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나온다. 386과 포스트 386의 투쟁은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 이른바 ‘진보 정권 10년’에 대한 판정을 대행한다. 민족·평등·분배를 내세웠지만 ‘일자리 창출’에 실패한 386세대의 이념에 대해 냉소적인 ‘성난 젊은이’들의 반란일 수도 있다. 영화 ‘디워’의 용과 이무기의 싸움과 같다. 누가 용이고, 누가 이무기가 될 것인지는 올해 12월 19일 갈린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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