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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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기도..

앤 셜 리 2010. 9. 6. 17:07

마음은 보물창고입니다. 그런데 그 보물창고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파울로 코엘료의 말대로, 사람들이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여 생의 빛나는 시간들을 쫓기듯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없다’를 쓴 오강남 교수가 엮어 옮긴 ‘기도’(대한기독교서회)는 그 보물창고를 찾게 해주는 힘으로서의 기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저자를 알 수 없는 책이지만 종교학자들이 “러시아 영성의 고전”이라고 평가하는 책이지요.

기도, 해보셨습니까? 저는 그동안 기도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것을 간절히 구하는 오만한 사람들을 많이도 보아온 탓에 쉽게 기도를 버렸으며, 무릎 꿇지 않고 손을 모으지 않아도 생활이 기도인 거라고 한껏 오만했습니다. 그리하여 진짜 보살펴야 할 것들을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처음엔 기도가 말하는 것인 줄 생각한다. 그러나 그윽한 경지에 이르면 기도는 듣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들려야 듣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기도’에서 권하는 것은 거룩한 이름을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르지요? ‘기도’의 주인공은 묵주를 돌리며 끊임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부릅니다.

‘관세음보살’이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경건해지는 이름이지만, 쉬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단순한 기도는 거룩한 이름의 신비 때문이 아니라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안으로, 한 곳으로 모으는 방법입니다. “혼자 조용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라. 부드럽게 숨을 쉬면서 마음의 눈으로 그대의 심장을 들여다보라. 생각을 다 모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를 되풀이하라. 다른 모든 생각을 다 씻어버리도록 하고, 평안한 마음과 인내심을 갖도록 하라. 이 일을 자주 반복하라.”

마음은 견문각지를 따라 자꾸 흩어집니다. 그걸 그대로 둔 채 기도하라고 하면 온갖 탐욕과 분노와 교만과 위선이 영적 우월감의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슬픔과 초조와 두려움으로 위태로워 보이는 거지요. ‘기도’에 나오는 큰스승은 그것을 어둠의 나라의 전쟁선포라 표현하면서 그 때 계속 거룩한 이름을 부르라고 합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이름을 부르는 자기 소리를 듣는데 집중하게 되면, 이름을 부르는 나를 응시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나중엔 순일하게!

그렇게 하다보면 기도를 하는 나와 기도를 받는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겁니다.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된 마음인 거지요. 그 마음이 바로 보배창고입니다. 어쩌면 그 곳 보배창고의 발견이야말로 진정으로 듣는 기도의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의 소리를 듣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할 테니까요.

 수원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