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한 월급에도 비싼 술집 가고 골프장에 드나드는 공무원들은 무슨 비결이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이들은 산하 공기업·기관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을 활용한다. 국토해양부(옛 건설교통부)를 예로 들자. 산하 도로공사·건설협회·대한주택보증·한국철도시설공단·한국감정원·한국공항공사 책임자들은 국토해양부에서 낙하산으로 떨어진다. 산하기관이나 공기업들은 항상 국토해양부를 쳐다보면서, 언제 누가 사장으로 부임할지 눈치를 살핀다.
지식경제부(옛 산업자원부) 출신이 부임하는 크고 작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도 50군데가 넘는다. 퇴임 후 차관급이 가는 자리부터 부이사관, 서기관, 사무관이 가는 자리까지 등급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정부 부처 직원들이 회식 후 음식점에 외상을 달아 두면, 눈치 빠른 산하기관에서 와서 슬그머니 외상값을 갚는 것은 과천 관가에서는 미풍양속으로 통한다. 직위가 올라가면 골프·단란주점·나이트클럽·상품권 접대로 발전한다. 따라서 관료들 입장에선 골프도 초대하고, 술값도 대주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을 자해(自害) 행위로 간주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질펀하게 벌어진다. 접대를 핑계로 자기들끼리 나눠먹고 마치 접대했다는 식으로 오리발 내미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윤리의식은 마비됐고, 예산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한다.
감사원이 작년에 적발한 근로복지공단 임직원 업무추진비 61억원의 명목을 보자. 어떤 임원은 평일 골프는 물론 극장 티켓, 단란주점 술값에다가 자가용 코팅, 세차비까지 법인카드로 지불했다.
아예 회사가 국민의 세금을 횡령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사기 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지난 2006년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를 받을 때 일이다. 당시 경영평가 요원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고객을 상대로 고객만족 설문지를 받았다. 이때 도로공사는 1700여명의 직원에게 사복을 입혀 마치 고객인 척하고 설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덕분에 도로공사는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고, 전 직원이 월 급여의 50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공기업을 개혁해야 하는 이유는 부패의 먹이사슬을 끊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좀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세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주로 전기료, 지하철료, 수도료 같이 정부 독점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민이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그런데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니 빚만 계속 늘어가는 것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나 자구 노력을 외면하고, 결국 늘어난 적자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295개 공공기관이 안고 있는 부채는 400조원이 훨씬 넘는다. 이는 2003년 기준으로 35%가 늘어난 것으로, 같은 기간 공기업 직원 숫자는 42%, 인건비는 무려 78%가 늘었다. 낮은 생산성에 도덕적 해이까지 겹친 공기업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국민 세금으로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 노조도 매번 인사철만 되면 머리에 붉은 띠를 둘러매고 '낙하산 사장 결사 반대'를 외친다. 사장이 노조원에게 떠밀려 사무실에 출근 못 하는 풍경이 이어진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장이 멀쩡히 출근하고, 몇 달 지나면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며 '노사 평화'를 외친다. 이쯤 되면 안으로부터의 공기업 개혁도 물 건너간 것이다. 결국 공기업 민영화 외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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