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승아. 이제는 실뭉치가 풀리는 일만 남았다."
정호승 시인..
조선일보에 연재돼온 희망편지를 읽을 때마다 이 말이 떠올랐다. 내가 희망을 잃고 비틀거릴 때 동화작가 정채봉 형이 내게 한 말이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내게 희망을 준 그의 이 말은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정채봉 형의 말대로 절망의 실뭉치가 엉킬대로 엉키면 풀릴 일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조선일보의 희망편지는 정채봉 형이 내게 준 희망의 말과 똑같다. 지금 절망에 허덕이는 많은 이들에게 실뭉치가 풀릴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아는 분 중에 지금은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으나 그에게도 희망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는 한번은 목매달아 죽으려고 넥타이 두 개를 끈으로 묶었으나 거실 가득히 스며들어오는 햇살에 먼지가 빛나는 것을 보고 '먼지도 저렇게 빛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죽지 못했다. 그리고 묶은 넥타이 두 개를 장롱 깊숙이 넣어두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넥타이를 꺼내보고 다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은 있다. 그것은 우리 삶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강한 희망의 순간이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꼭 필요하듯이 희망을 지니기 위해서는 절망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절망만 보고 희망은 보지 못한다. 그것은 밤하늘의 별만 보고 정작 그 별을 빛나게 하는 어둠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늘 없는 햇빛은 없고, 눈물 없는 미소는 없고, 슬픔 없는 기쁨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햇빛만 원하고 기쁨만 원한다. 정말 햇빛만 내리쬔다면 내 인생이라는 대지는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이집트 사막의 모래 위에 담요 몇 장을 덮고 하룻밤 지내본 적이 있다. 밤하늘의 별들은 아름다웠지만 너무나 춥고 황막해서 하룻밤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후 나는 내 인생에 햇빛만 비치기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내 인생이라는 대지에 절망의 비바람과 고통의 눈보라가 몰아쳐 그 눈비가 나무를 키우고 숲을 이루어 새들과 별들이 쉬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행이 나에게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울 때마다 '아, 나에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다시 희망의 고삐를 잡는다.
쥐 한 마리를 캄캄한 독 속에 집어넣으면 3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지만, 그 독 속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가면 적어도 36 시간은 죽지 않고 견딘다고 한다. 이렇게 희망은 죽음 앞에서도 생명을 지켜내는 강한 힘이다. 조선일보의 희망편지는 이렇게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티게 하는 힘이다. 30분을 더 버티면 30분이 한 시간이 되고 1 년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새해에는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면서 나도 나에게 쓰는 '희망편지'를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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