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씨가 지난 6월 말 펴낸 신작 '강남몽(夢)'은 우리 시대의 대표작가가 우리 사회의 논란적 주제를 다뤘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9월부터 인터넷 문학잡지에 연재될 때 조회 수 640만건, 댓글 2만7000개를 기록했고, 책으로 묶어져 나오자 종합베스트셀러 10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15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작가 자신도 "20년 전부터 서울 강남 형성사를 쓰고 싶었다"면서 새 작품에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소설은 1995년 삼풍백화점(소설에서는 대성백화점으로 나온다) 붕괴 사건을 실마리 삼아 그와 관련 있는 다섯 인물을 등장시킨다. 일본 헌병 밀정 출신으로 광복 후 미군정 특무기관 요원으로 변신했다가 강남에 부동산 왕국을 건설한 김진 회장, 룸살롱 마담 출신으로 김 회장의 애첩인 박선녀, 강남 개발 때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었고 박선녀와 동거했던 심남수, 강남 유흥업소를 장악했던 조직폭력배 홍양태, 대성백화점 지하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는 임정아의 이야기가 각각 독립된 장(章)을 이루면서 서로 얽혀 전체 그림을 그려낸다.
소설에서 서울 강남은 '뜨거운 욕망'과 '기회주의'의 무대이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광주대단지의 천막촌에서 자란 임정아를 제외한 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권력에 기대어 개발 정보를 먼저 빼내고 폭력과 사기를 동원하며 강남을 일확천금의 발판으로 삼는 이들을 통해 작가는 '남한의 자본주의 형성 과정과 오점투성이 근현대사'를 담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면 제목('강남몽')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강남 개발 과정에서 큰돈을 챙긴 몇몇 사람이고 다루는 시기도 1970~80년대이다. 지금 강남에 살고 있는 대부분 사람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강남몽'은 '강남 개발을 이용한 한탕의 꿈'이지 '강남 주민의 꿈'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소설에 그려지는 강남의 이미지를 그대로 오늘의 강남에 연결시킨다. 그리고 '거대한 거품으로서의 강남'을 비판하며, 우리 안팎에 도사린 '강남의 꿈'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구로서의 강남이 아니라 현재 강남의 실체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2006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펴낸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훨씬 도움이 된다. 강남 개발 구상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강남 죽이기 논쟁'이 벌어졌던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 강남의 변화를 다룬 이 책에서 강 교수는 강남이 한국 사회에서 재앙과 축복의 양면을 함께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평균적인 강남 거주자는 전투성으로 무장한 중산층이고, 강한 경쟁심과 위계질서에서 상층부를 차지하려는 '강남 정신'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말마따나 지금 강남 주민의 다수는 집 한 채 갖고 직장 생활과 자식 교육에 열심인 평범한 중산층이다. 상당수가 '개천에서 난 용(龍)'들인 그들은 급속히 확대된 고등교육과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아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들에게 지위와 실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무 이행을 좀 더 주문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꿈'을 깨고 나면 덧없는 욕망이나 가상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들이 어떤 형성 과정을 거쳤고, 지금 무슨 꿈을 꾸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신(新)강남몽'이 필요할 것 같다.
발행일 : 2010.09.03 / 여론/독자 A35 면
'신문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민의 世說新語] (72) 오서오능(?鼠五能) (0) | 2010.09.18 |
---|---|
예순 넘어 등단이 기적처럼 왔다 (0) | 2010.09.16 |
월남 이상재의 YMCA 운동 (0) | 2010.09.06 |
강화_시인 함민복 (0) | 2010.09.06 |
괜한속병 (0) | 2010.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