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정지용 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0) | 2010.11.04 |
---|---|
있어도 없음이요 없어도 있음이라 (0) | 2010.11.02 |
쌈밥 (0) | 2010.08.29 |
[스크랩] 2월 (0) | 2010.03.01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0) | 2009.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