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좋아하는 "시"

향수

앤 셜 리 2010. 10. 27. 10:59

                             향수                                  

                                                                     정지용 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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