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실학자였고 경학자였으며 뛰어난 경세가였습니다. 더 경이로운 일은 현재에도 전해지는 다산의 시가 2500수가 넘는 명성 높은 시인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미 알려진 대로 일과 사물을 묘사하는 그의 탁월한 수법은 정말로 핍진하고 리얼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처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가 정말로 많습니다. 운(韻)이나 고저(高低)도 가리지 않고 생각이 떠오르면 술술 읊어대는 다산의 시 짓는 솜씨는 비교될 사람이 없는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1801년 신유옥사를 당해 경상도 포항 곁의 장기로 귀양 가서 지은 시가 많은데, 그 중의 「고시 27수」라는 시의 하나가 제비와의 대화입니다.
제비가 처음 날아올 때는
子初來時 지지배배 쉬지 않고 떠들더라
語不休 떠드는 말의 뜻이야 알지 못해도 語意雖未明 집이 없어 서럽다고 하소함 같더라 似訴無家愁 느릅나무 홰나무 늙으면 구멍도 많은데 楡槐老多穴 왜 거기서 살지 않느냐 여겼더니 何不此淹留 제비는 다시 와서 또 지지배배 燕子復
사람의 말에 대꾸하는 것 같더라 似與人語酬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 와서 쪼아먹고 楡穴
來啄 홰나무 구멍에는 뱀이 와서 더듬는다고 槐穴蛇來搜
제비의 신세를 처량하게 여기다보니 어쩌면 귀양살이하는 자신의 신세와 닮았다고 여겼는지, 여기에도 적(敵)이요 저기에도 적뿐인 쫓기는 사람의 신세가 한탄스러워 읊었던 시로 보입니다. 박씨를 날라다가 흥부를 살맛나게 만들었던 제비이건만, 살 집이 없어 지지배배 우짖는 모습으로 다산과 제비는 훌륭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제비는 나무에 둥지를 틀지 못하고, 언제나 사람의 집 처마나 서까래의 어디에 집을 지어, 사람의 위력으로 다른 적이 침범할 수 없는 멋진 자기보호 수단을 동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어떤 사람에게서도 보호를 받을 수도 없고, 누구에게도 의탁할 수 없는 천애의 고아 같은 신세여서 제비보다도 더 서러운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집이 없어 서러운 제비가 아니라, 남의 집에 의탁해서 슬프게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비로 의인화해서 읊는 그의 시 솜씨는 역시 훌륭합니다.
지지배배로 울어대는 다산의 울음소리, 어찌하여 그런 위인이 그런 불행에 처했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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