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좋아하는 "시"

가을의 노래

앤 셜 리 2012. 2. 18. 22:36

 

가을의 노래

 

김대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싶어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가을에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그 맑은 마음결에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써 보낸다.


주여! 라고 하지 않아도
가을엔 생각이 깊어진다.

한 마리의 벌레 울음소리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고
잊혀진 일들은
한 잎 낙엽에 더 깊이 잊혀진다.


누구나 지혜의 걸인이 되어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삶은 그렇게 아픈 거라 말한다.


그래서 가을이다.
산 자의 눈에 이윽고 들어서는 죽음.
死者들의 말은 모두 詩가 되고
멀리 있는 것들도
시간 속에 다시 제자리를 잡는다.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이란 말 속에 있다.

가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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