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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여섯 살 딸의 거짓말

앤 셜 리 2012. 2. 28. 14:48

이제 여섯 살 된 막내딸이 눈병에 걸려 인근 안과를 찾았다. 지루하고 긴 기다림에 몸을 꼬기도 지친 아이가 대기실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때마침 딸아이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아이가 진료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어, 친구다!" 한다. 내가 친구가 아니라 언니라고 하니 "친구 맞는데" 하며 우긴다. 평소라면 선선히 언니라고 했을 딸아이의 반응이 재미있어 보란 듯이 그 아이에게 나이를 물었더니 "아홉 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딸아이에게 "넌 몇 살이지?" 하고 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일곱 살" 한다.

아이가 이제까지 한 모든 거짓말들 중에 가장 센 것이었다. 여러모로 순진한 데가 많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토록 맹랑한 거짓말을 하다니. 순간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네 돌이 되어서야 겨우 말문이 터진 딸아이에게 일곱은 나이를 말하는 숫자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엄마 아빠, 나이 차가 많은 형제들은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을 받지 않으므로 나이를 비교하는 일은 유치원에서만 일어난다. 그 유치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집단이 바로 일곱 살이다. 딸아이는 넷, 다섯, 여섯, 일곱이 아닌 아홉이라는 미지의 숫자에 일곱으로 대응하며 소심한 나이 부풀리기를 하고 만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의 장이 되어준 유치원에서 딸아이는 아기에서 아이가 되었고, 더불어 많은 것을 잃고 얻었다. 나이가 많은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치자 앞으로 점점 더 독한 사회생활을 하게 될 아이가 안쓰러워져 꼭 안아주며 귀에 대고 "거짓말하면 안 돼!" 하고 속삭였다.

전성희·콘텐츠기획자, 마디에이전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