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나의 이야기

유년의 뜰(아버지의 추억)

앤 셜 리 2020. 5. 21. 23:45

사진은, 나의아버지

....................................................
우리집 봄은 노란 개나리
울타리에서 시작 되었다
겨우내 마른 나뭇가지에
노란 물이 돈다 싶으면 울타리는
금새 샛노란 꽃 장식으로 변했다

삼월삼진은 강남 갔던 제비들이
봄을 물고 오는 날
대청마루 위 방문앞에 둥지를 틀때면
아버지는 매년  마루밑에
있던 베니다판을 꺼내  톱으로 잘라
둥지 밑에 대주셨다
일년만에 만난 환영 인사고 집 인테리어
재료, 진흙이나 지푸라기등을 받아내는 쓰레받기인 셈이다
얼마후, 찍찍짹짹
집안이 소란하다 싶으면 둥지에 새식구가
생겼다는 알림이다.
새끼들 먹이에
하늘구만리 날아다니며 산과들에서
잡은 벌레 입안 가득 물고 날아와 일단
빨래줄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한번 힘내보자 하며
파드득 날아올라 둥지 속
새끼들 주둥이에 하나하나
넣어주곤 바로 또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곤 했었는데..

닭장안에는 생명 탄생을 알리는 에미닭의
고성이 마을 어귀까지 들리도록
목을 비틀며 꼬끼요를 외쳐댔다
그리고는 뒤뚱거리며
삐약삐약 병아리들을 앞장세우고 나왔다
노랗고 하얀 털보송이들
핑크빛 다리 아주 작고 여린데
에미닭 놓칠새라
쫑쫑쫑 뛰고 걷고 바쁘다
에미가 발로입으로 헤쳐놓은 흙더미에서
콕콕 뭘 찍어 먹는지 쑥쑥 자라나던
햇 병아리들
강아지도 신이나서 쫒아가면 병아리들은
기겁하며 얼릉 에미 품속으로 숨었다
마당에 겨우 나온 병아리들을 자꾸 괴롭히면 강아지는 마루기둥에
묵이기도 하고..
앞산(관양산)에서 불어오는 싱그런 바람의
향기와 봄 햇살로 뭇 생명들은
저절로 무럭무럭 자라던 곳.

삼백평 뜰 요소요소에 한련화, 봉숭아,
금송아, 과꽃, 접시꽃,
한 여름 우물가 돌틈에는 빨강 노랑 하양
채송화도 방싯방싯!.
은은한 꽃 향기 퍼지면 덩달아 벌 나비들도
신이나 나플대고
지는 꽃잎인지 흩날리는 나비인지 함께
나부대며 날아 다녔던 어린시절
초 여름 잠자리까지 합세하면 싸리비 들고 잠자리 잡겠다고
쫒아 다니면 얼굴은 빨갛게
익어버린 능금 ..

도르르 말려있던 분꽃은
저녁할 때에야 꽃잎을 활짝 열어주었다
방에서 바느질하시던
엄마는 언니에게 분꽃 폈니?
묻기도 했다
보리쌀은 담궜니 하고 물어보신것도 같다

텃밭에는 도마도 오이 옥수수 단수수깡들이
너울너울 자라고 있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오면 가방 마루에 내던지고
밭으로 달려가면 삼각으로 세워논 나무막대
사이에서 빨갛게 익은 도마토 오이등을
따먹었다
밭가에 심어놓은 단수수깡도 꺽어다
언니들과 몇 토막씩 나눠 섬유질은 밷어내고
단맛만 쪽쪽 빨아 먹었다

양지쬐 바른곳에 탐스럽게 피어나던
월계꽃 (매달 한송이씩 늦가을까지 피는)과 꽃 사과나무,
고개를 한껏 뒤로 젓혀야만 볼 수 있었던
노란 해바라기. 늦가을엔 쟁반만한
꽃대속에 알알이 박힌 회색빚 씨앗은
우리들 주전버리가 되기도 했다
뒤곁가는 길 복숭아 나무엔 새끼줄로
만든 그네도 있었지.
대롱대롱ᆢ 놀다놀다 심심하면
그네를 타고 앉아 눈감고 흔들흔들
왔다갔다하면 어지럽기도 고소하기도
했었다 그 옛날 오남매 놀거리
먹거리에 마음 써주셨던 자상했던 아버지
철이든 후에야 알았다 아버지의 고마움을ᆢ

앞뜰 화단에는 향기진한 토종 국화들
이른 봄, 나는 소담스럽게 올라오는
국화 순들을 쑥이라고 다 도려내
아버지를 화들짝 놀라게 해드린적도 있었는데
혼난 기억은 없다 그 나이에 그렇지 하고
이해 하셨던것 같다

동네 성당 행사때면 알싸한 장미향기에
국화향기에
검은 베일을 쓴 외국 수녀님들, 가위들고
대문을 두드리던 환환 미소
꽃을 한아름 얻어가던 모습
세상에 없는 천국 마당

비오는 날 나뭇가지라도 잘못 건드리면
후드득 물세례에 강아지 비맞은듯 털어내고..
바람이라도 불면 계절따라 차례로 오는
색색의 꽃 잎들은 꽃 눈깨비가 되어
마당은 울긋불긋 꽃 카펫을 깐듯 화려했다

유월 장마때면 하천뚝 미루
나뭇가지 꺽어다 조물조물 하얀 속살 빼내
삐리삐리삐리리 나무 피리도 만들어
불어주셨던 아버지
강낭콩 껍데기로는 요리저리 접어 방석도
만들고 수수깡으로는 안경도 자전거도
멋지게 만들어 주셨다
장난감이 없던 시절이었다
가을이면 안방 건넌방 사랑방 창호지문
걷어다 물을 뿌리신후
새 창호지에 코스모스 꽃 잎도 붙히셨다

우리집 마당이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철없던 시절
꽃대궐이 영원할 줄 알았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
아버지 운수사업, 버스 두대의 연거픈 사고
당시 신문에 날 정도로 큰 인사사고였다
공주 금강다리에서 어미소 따라오던 송아지가
갑자기 차선으로 들어와 이를
피하려던 버스가 다리아래로 추락한 사고였다
그때는 자동차보험이란게 없었다
글자 그대로 운수사업이었다
차주가 고스란히 집팔고 빚얻어 감당해야 했다

마당 없는
집으로 이사한 후에야 알았다
창세기 에덴동산이 조금 남아있던 그곳에
다시는 갈 수 없다는것을ᆢ
영원할줄 알았던 우리집은 작별인사도
없이 내곁을 떠나고
학교 갈때면 어디까지 따라왔다 쓸쓸히
뒤돌아가던 우리집 개 보꼬도 떠나고
모두 떠나고...
담머리에 피어나던 노란개나리도
진분홍 복숭아 꽃잎들도
세월의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갔는지.
누구에게 물려줄 수도 없는
나만의 찬란한 추억들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 때가
내 기억속에서
원거리로 물러나주지 않기 바라며
이 글을 쓴다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내 유년시절을
지켜봐줬던 소박한 꽃들ᆢ
어쩌다 시골 동네에서 마주 칠때면
반갑고 서러워 울컥!
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에게 달려 갑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듣고 떠나신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1926년생 우리아버지
성북구에 사시며 혜화학교 졸업
지금 경기고등학교 전신인 제일고보
일제시대 일본학생들로부터
조센징이 천황상 받았다고 이지메까지
당해 그 충격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금강산으로 묘향산으로 유람 다니며 치유
방송국에 근무하시다 6.25전쟁
방송국 간부셨던 아버지 요 주의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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