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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동 차량·1000㎡ 수장고… 이건희 컬렉션 '특급 이송 작전'

앤 셜 리 2021. 5. 5. 07:05
2만1693점 유물 운반 작업… 온습도 관리, 지진·화재도 대비

"명품을 안전하게 옮겨라!"

초특급 유물 이송 작전이 시작됐다. 이건희 컬렉션 고미술품 2만1693점을 삼성 측에서 기증받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정도 대규모 기증은 국립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이라 총력을 다해 이송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거의 박물관 하나를 통째로 옮기는 규모의 '유물 대이동'이다.

◇유물 전문 운송 차량에 실어 박물관 수장고로

기증 소식이 발표된 건 지난달 28일이지만, 이송 작업은 그보다 일주일 앞선 21일 시작됐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비롯해 국보·보물 60건은 이미 도착했고, 중량이 큰 석조물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의 운반 작업도 14일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박물관 측은 "호암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양쪽에서 출발한 유물을 무진동 차량 등 유물 전문 운송 차량에 실어서 수십 차례에 걸쳐 옮기고 있다"며 "차량은 모두 삼성 측에서 준비했다"고 했다.

운반된 작품은 일단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내 별도 공간으로 직행한다. 전체 수장고 21개 중 하나를 '이건희 수장고'(면적 약 1000㎡)로 마련했다. 박물관은 지난 2년간 진행한 수장고 중층화 공사로 유물을 2층까지 쌓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수장 공간은 넉넉하다고 했다. 온습도 관리는 물론 지진과 화재에도 끄떡없이 설계됐다.

통상 박물관 수장고에 새 유물이 들어오면 포장을 풀고 훈증(燻蒸·일종의 소독 과정)과 정리 작업을 거쳐 정식 소장품으로 등록한 후 재질별 수장고로 옮겨진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건희 컬렉션은 일반 기증품과 달리 별도의 코드를 부여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이건희' 혹은 '삼성'으로 분류해 유물마다 '이건희 1' '이건희 2' 하는 식으로 등록 번호를 매길 예정"이라며 "워낙 방대한 숫자인 데다 작업 과정이 까다로워 2만1600점을 모두 등록하는 데 2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중량이 큰 석조물 834점은 아직 어디에 둘지 결정이 안 돼 나중에 옮기기로 했다.

◇다시 주목받는 컬렉터, 소전 손재형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 중 으뜸으로 꼽히는 '인왕제색도'와 지난해 미술품 수집가 손창근 선생이 기증한 '세한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 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컬렉터이자 서예가였던 소전 손재형(1903~1981)의 소장품이었다. 문화계에선 "작년과 올해 국민 품에 안긴 최고의 두 명품이 원래 '손재형 컬렉션'이었다는 배경도 흥미롭다"면서 "그의 감식안을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양정고보 시절부터 추사 작품에 심취해 일찍이 수집가로 이름을 떨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세한도'를 되찾아온 주인공이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1995년 본지 인터뷰에서 "저희 부부가 최초로 산 미술품은 소전 손재형씨의 소장품들이었는데 '인왕제색도' 같은 명품이 포함돼 있어 행운이었다"며 "회화나 고졸한 도자기의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때부터 전문가들에게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기고자 : 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