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풀 꽃 피는 언덕

좋아하는 "시"

못난 사과

앤 셜 리 2022. 10. 25. 05:11

못나고 흠집 난 사과 두세 광주리 담아놓고
그 사과만큼이나 못난 아낙네는 난전에 앉아 있다.
지나가던 못난 지게꾼은 잠시 머뭇거리다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 꺼낸다
파는 장사치도 팔리는 사과도사는 손님도 모두
똑같이 못나서 실은 아무도 못나지 않았다.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시는 한마디로 삿된 것이 없는 생각이라고(공자)

불치의 병 (정영상)

나이 들수록 슬픔도 자라는가
올해 내 슬픔은 서른여덟 살 먹었다
내 싸움과 술버릇은 동갑이다
앞으로 중독이 되어 불치의 병이 될 슬픔이여

겨울 골짜기

가슴 깊이 가랑잎 쌓이고 며칠 내 뿌리는
찬비
나 이제 봄날의 그리움도
가을날의 쓰라림도 잊고
묵묵히 썩어가리
묻어둔 씨앗 몇 개의 화두話頭
푹푹 썩어서 거름이나 되리
별빛 또록한 밤하늘의 배경처럼
깊이깊이 어두워지리

가을 해후 (조향미)
그대 가는구나
지친 울음 마침내 가라앉고
고요한 봇물 비친
산그림자 은은히 깊다
못둑 들꽃에 잠시 앉았다
떠나는 잠자리
하르르 저 결 고운 햇살 속으로
그대 아주 가는구나

들꽃 같은 시

그런 꽃도 있었나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 더 많지만
혹 고요한 눈길 가진 사람은
야트막한 뒷산 양지바른 풀밭을 천천히
걷다가
가만히 흔들리는 작은 꽃들을 만나게 되지
비바람 땡볕 속에
서도 오히려 산들산들
무심한 발길에 밟히고 쓰러져도
훌훌 날아가는 씨앗을 품고
어디서고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
저 풀밭의 초롱한 눈으로 빛나는 하얀 별꽃

양지밭

햇볕이 넘실넘실
사방팔방 날아온
오만가지 풀씨
멋대로 자란 풀밭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공터
큰 나무 한 구루 없어
오히려 싱그런 풀꽃들이
자유로이 풍요로이
열린 하늘아래 넘실넘실

햇살에게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치설  (0) 2021.02.14
述病  (0) 2021.01.02
버드나무 길  (0) 2020.05.01
손님 별  (0) 2015.03.18
[스크랩]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0) 2014.11.09